▲ 왼쪽부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하성주 선임연구원(제1저자)과 아주대 염동일 교수(교신저자).ⓒ아주대
아주대학교는 물리학과 염동일 교수 연구팀이 차세대 광 정보처리 기술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Graphene)에서 매우 강력한 비선형 광학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전기적으로 정밀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미래 광 컴퓨팅 기술 등의 성능 혁신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2차원 신소재다. 전기적·광학적 특성이 뛰어나다. 그래핀 내부 전자의 이동속도는 구리보다 100배 이상 빨라 초고속 소자 구현에 유리하다. 얇고 투명하면서 기계적 강도도 우수하다.

그러나 단원자층 구조의 그래핀은 매우 얇아 빛의 선형 흡수가 2.3%에 불과해 빛을 검출하거나 변조하는 광소자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그래핀 전기 소자에서 발생하는 사광파 혼합 반응 모식도.ⓒ아주대
이에 연구팀은 그래핀의 비선형 광 특성인 ‘사광파 혼합 현상(Four-Wave Mixing, FWM)’에 주목했다. 비선형 광 특성이란 빛이 매질에 입사할 때 매질에서 유도되는 편극(Polarization)의 크기가 빛의 전기장 세기에 선형적으로 비례하지 않고 제곱이나 세제곱 등 고차항에 비례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일반적인(선형) 경우, 빛을 2배 세게 비추면 반응도 2배 커지는데 비선형은 빛을 2배 세게 비췄더니 반응이 단순 비례하지 않고 4배, 8배처럼 크게 변하는 특성을 말한다. FWM은 비선형 광 특성이 나타날 때 생기는 대표적 현상으로, 여러 개의 빛이 섞이면서 새로운 색(파장)의 빛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론상 파장이 거의 같은 2개 이상의 빛을 쬐는 준축퇴(Nearly Degenerate, ND) 조건에서 그래핀 고유의 밴드구조로 인해 비선형 광특성이 강하게 발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준축퇴 사광파 혼합(NDFWM)’ 현상에 주목한 연구팀은 그래핀 내에서 기존에 보고된 수준을 뛰어넘는 매우 강한 비선형 광 현상을 관측하고, 이를 전기적 도핑을 통해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분석 결과, 그래핀의 3차 비선형 감수율은 광통신에 사용되는 C-밴드 파장 영역에서 10⁻¹³ ㎡ V⁻² 수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기존 고성능 비선형 광소재와 비교해 1000배 이상 높은 값이다. 강한 레이저를 쓰지 않고도 매우 적은 에너지로 강력한 비선형 광신호 변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연구팀은 전기적 도핑을 통해 단원자층 그래핀에서 비선형 광신호의 켜짐과 꺼짐을 나타내는 온·오프 대비(On-Off Contrast)가 최대 23㏈(99.5%)에 달하는 것을 확인했다. 전기를 걸어서 그래핀의 비선형 광 반응을 스위치처럼 조절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광통신과 광센싱 분야는 물론 AI 데이터 센터에서 전기 신호 대신 광신호로 정보를 전달하고 연산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성과는 준축퇴 사광파 혼합 현상을 통해 그래핀 내부 전자의 초고속 동역학 특성을 새롭게 관측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낮은 광세기 조건에서 비선형 광응답이 특정 전기적 상태에서 공명(resonance) 특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빛에 의해 여기된 전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양자적 상태를 유지하는지를 의미하는 ‘결맞음 시간(decoherence tim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특정 조건에서 그래핀 내부 전자들이 매우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일정 시간 동안 양자적 성질(정돈된 상태)을 유지하는 모습을 사광파 혼합 실험을 통해 관측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래핀이 양자 정보를 다루는 초고속 광소자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론 분석을 통해 이런 현상이 그래핀 내 디랙(Dirac) 전자(질량이 없는 것처럼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전자)의 결맞음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광여기된 전자의 결맞음 시간이 최대 70펨토초(1fs는 10⁻¹⁵초, 1000조분의1초)에 이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매우 강한 레이저가 필요한 고조파 생성(high-harmonic generation) 방식으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그래핀의 초고속 양자 동역학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염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그래핀의 비선형 광응답이 효율적인 광신호 변환뿐 아니라 전자의 초고속 양자 동역학을 탐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향후 초저전력 광소자와 초고속 광정보 처리 기술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광학·포토닉스 분야의 국제 저명 학술지 ‘포토닉스(PhotoniX)’에 지난달 18일 온라인 게재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DGIST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하성주·박남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최영찬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 염동일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각각 참여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실 후속사업, 중견연구자 지원사업과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양자암호통신 전송기술 고도화 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 아주대학교 율곡관 전경. 좌측 상단은 최기주 총장.ⓒ아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