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유럽의 동시다발적 통상 압박과 정부의 외교적 시험대를 묘사한 AI 이미지. ⓒ챗GPT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무역 대상국의 수출품을 겨냥한 고강도 무역장벽을 예고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통상 대응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강제노동 문제를 명분으로 한국산 제품에 최대 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이어, EU는 철강 수입 규제를 대폭 강화하며 기준 물량을 초과한 제품에 대한 관세를 현행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주로 예정된 유럽 순방에서 EU 측과 의미 있는 협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일(현지시간)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거래를 충분히 차단하지 못한 60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10%~12.5%의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인도, 베트남 등 46개 경제권에는 가장 높은 수준인 12.5%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연합(EU)과 영국, 캐나다, 멕시코, 대만, 인도네시아 등 14개 경제권은 이미 강제노동 생산제품 수입금지 관련 국내적인 제도가 존재한다는 등 이유로 10% 관세 대상으로 분류했다.
문제는 한국이 지난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사실상 15% 수준의 관세 상한선을 방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301조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기존 합의의 실효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미국은 향후 과잉생산과 공급망 왜곡 문제를 겨냥한 추가 조사도 예고하고 있어 관세 부담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발 관세 압박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EU도 철강 시장 보호를 위해 강력한 수입 규제에 나섰다.
EU는 최근 철강 수입 쿼터 제도를 전면 개편하면서 연간 무관세 수입 물량을 기존 연간 3500만t에서 1830만t으로 절반 가까이 줄이고, 할당량을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기존 25%였던 관세를 50%로 상향하기로 했다.
EU는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해 글로벌 철강 물량이 유럽 시장으로 몰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실제 EU는 미국의 50% 철강 관세 이후 역내 철강업계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사실상 치명적인 악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EU는 지난해 기준 한국 전체 철강 수출의 13.8%(388만4000t)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EU에 약 311만t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적용 대상 철강 제품을 수출했다. 이 가운데 258만t은 국가별 할당을 적용받아 무관세 혜택이 적용됐고,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 25%를 물었다.
EU의 새 관세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무관세 할당량은 130만t가량으로 반토막이 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50%의 관세 폭탄을 맞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대해 50% 수준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EU까지 초과 물량에 대해 50%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한국 철강업계는 양대 핵심 시장에서 동시에 고율 관세 장벽에 직면하게 된다.
철강 제품의 위기는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산업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 자료를 보면, 철강제품 수출은 전년 대비 지난 3월 -0.3%, 4월 -9.3%, 5월 -2.1% 등으로 감소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유럽마저 문턱을 높이면 수출 전략 자체를 다시 짜야 할 수 있다"며 "특히 범용 철강 제품의 경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EU는 한국 철강 수출의 핵심 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자동차강판과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 비중이 높지만, 쿼터 축소와 관세 인상으로 향후 수출 물량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EU 모두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이재명 정부의 통상외교도 시험대에 다시 올랐다. 
지난해까지는 사실상 미국만 관리하면 됐지만 이제는 미국과 EU가 동시에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국면이어서 정부가 양측과 각각 협상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상당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 EU의 철강 관세 폭탄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오는 9일부터 18일까지 유럽을 방문한다. 9일부터는 이틀간 벨기에 브뤼셀에 머물며 한-EU 정상회담 등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