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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학력 제한 철폐’ 채용이 반도체 인력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회사는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춘 실력 중심 채용 혁신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과 성과급 이슈로 예민해진 반도체 인재 확보전이 채용시장까지 번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설계 등 핵심 직무에서 세자릿수 규모 채용이 예고되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17일부터 시작한 신입사원 수시채용에서 기존 채용 공고에 명시하던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등 학력 자격 요건을 삭제했다. 지원자의 학력보다 경험, 직무 역량, 기업문화 적합성,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채용에서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이끌 설계 등 주요 직무에서 수시채용으로는 이례적인 세 자릿수 규모 선발도 진행한다.
회사는 이번 조치를 AGI(범용인공지능) 시대 인재상 변화로 설명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 온 ‘생각 근육’, ‘적응 근육’, ‘공감 근육’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측은 “미래 인재의 경쟁력은 특정 학위나 정형화된 스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채용 기준 혁신”이라고 밝혔다.
◇학력보다 주목받는 건 ‘설계 세 자릿수’ 채용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학력 제한 폐지 자체보다 채용 직무와 규모다. 반도체 설계는 회로, 소자, 공정, 검증 역량이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고난도 직무다. 학력 문턱을 없애더라도 실제 선발 과정에서는 프로젝트 경험, 직무 이해도, 실무 적응력이 당락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공고가 단순한 고졸 신입 확대를 넘어 검증된 현장형 인재와 저연차 실무형 인재까지 지원 풀에 포함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력직 공고처럼 연차와 경력 요건을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신입 채용의 틀 안에서 다양한 배경의 지원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특정 회사를 겨냥했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다만 AI 반도체 인력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경쟁사 주니어급 인력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공고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설계 직무는 반도체 개발 경쟁력과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채용시장 파급력이 크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드러난다. 삼성전자 직원 커뮤니티에서는 SK하이닉스 채용 공고가 공유되며 “이번 하이닉스 채용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에는 “설계만 세 자릿수로 뽑는다”, “중고신입으로 뽑겠다는 말 아니냐”, “설계 주니어급이 다 나갈 듯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성과급·HBM 경쟁이 키운 이직 민감도
삼성전자 내부 반응이 예민한 배경에는 최근 반도체 업계의 보상 이슈가 있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AI 메모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고, 실적 개선 기대감도 높아졌다. 반면 삼성전자는 HBM 경쟁력 회복과 파운드리 수익성 개선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기술 경쟁이 성과급과 처우 문제로 이어지면서 핵심 인력 이동 가능성도 민감한 사안이 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등을 포함한 임금·성과급 합의를 마무리하며 파업 리스크를 낮췄다. 하지만 보상 체계와 사업부별 형평성에 대한 내부 불만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설계 등 핵심 직무를 대규모로 열자, 일부 직원들이 이를 이직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설계 인력은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 HBM, 고성능 D램, 차세대 메모리, AI 서버용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설계·검증·제품화 경험을 갖춘 인력의 중요성은 커진다. SK하이닉스가 학력 제한을 풀고 직무 역량 중심으로 지원 문턱을 넓히면, 기존 대기업 채용 기준에서 걸러졌던 다양한 경험 보유자도 지원할 수 있다.
삼성전자 고졸 출신 인력에게도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설계 직무는 학사 이상 인력을 중심으로 채용돼 왔다. 다만 고졸로 입사한 뒤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내부 직무 전환이나 실무 역량을 축적한 인력이라면, 학력 제한 폐지가 새로운 지원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공고가 “학력보다 실무 역량을 보겠다는 신호”로 읽히는 이유다.
◇AI 인재전, 학벌보다 실력 검증으로 이동
이번 채용은 반도체 인력시장의 기준 변화를 상징한다. 과거 대기업 반도체 채용은 전공, 학위, 학교, 학점 등 정형화된 스펙이 1차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AI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답형 스펙보다 실제 문제 해결 경험, 빠른 학습력, 조직 적응력, 협업 능력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올라서고 있다.
다만 학력 제한 철폐가 곧 채용 문턱 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학력이라는 형식 요건이 사라지면 지원자 풀은 넓어지지만, 최종 선발 기준은 직무 테스트와 면접, 프로젝트 경험 검증으로 이동한다. 간판보다 실력 증명이 더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구조다.
SK하이닉스의 이번 채용은 AI 반도체 경쟁이 기술과 설비를 넘어 인재 확보전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HBM으로 주도권을 키운 SK하이닉스는 채용 문턱을 넓혀 성장 가능성 있는 인재를 확보하려 하고, 삼성전자는 성과급과 조직 사기, 핵심 인력 방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채용의 의미는 학력 제한 폐지보다 어떤 직무에서 얼마나 뽑느냐에 있다”며 “SK하이닉스가 실제로 어떤 학력과 경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는지, 삼성전자 설계·검증 조직에서 실제 이직 움직임이 나타나는지,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학력 중심 채용 기준을 완화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