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 매장 전경 ⓒ뉴시스
홈플러스 회생 절차가 벼랑 끝에 섰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밀린 임금 일부는 지급했지만 남은 사업 부문을 살릴 2000억원 운영자금은 여전히 마련하지 못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오는 30일까지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을 내라고 요구했다.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앞두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낸 셈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 홈플러스 노조 등에 의견조회 형태의 공문을 발송했다. 법원은 이 공문에서 오는 30일까지 2000억원 규모 추가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내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연장된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10일 앞둔 현재까지도 관리인이 2000억원의 추가 자금 조달 계획에 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은 지난해 12월29일 제출된 회생계획안을 수행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회생절차 폐지에 관한 의견도 달라고 했다. 기한 내 구체적인 의견을 내지 않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보고 처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오는 30일까지 법원이 인정할 만한 자금 조달 계획이 마련되지 않으면 회생계획안 인가가 어려워질 수 있다.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은 다음달 3일이다. 회생절차는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크고 계획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유지된다. 반대로 회생계획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절차는 폐지될 수 있다. 이 경우 홈플러스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파산으로 본다.
홈플러스는 그동안 슈퍼마켓 부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을 회생의 핵심 축으로 내세워왔다. NS홈쇼핑은 전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대금 1206억원을 완납하고 거래를 마무리했다.
이 돈으로 급한 불은 일부 껐다. 홈플러스는 이날 4월 임금 중 미지급됐던 75%와 5월 임금, 휴업수당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업계에서는 전날 완납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대금이 활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익스프레스 매각대금은 밀린 임금과 납품대금 등 기존 채무 처리에 우선 쓰일 가능성이 크다. 영업 정상화를 위한 신규 자금으로 활용할 여력은 제한적이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6월 임금도 아직 지급하지 못했다. 임금 지급일은 매달 21일로 이달에는 21일이 토요일이라 지난 19일 지급됐어야 했지만 미지급 상태로 알려진다.
문제는 남은 사업 부문 회생에 들어갈 돈이다.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안을 이행하려면 상품대금과 임금, 물류비, 구조조정 비용 등에 쓸 약 2000억원이 필요하다. 익스프레스 매각은 끝났지만 남은 사업 부문 운영자금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이 자금은 긴급운영자금, 이른바 DIP 금융으로 불린다. DIP는 회생절차를 밟는 기업이 영업을 유지하기 위해 빌리는 신규 자금이다. 홈플러스가 상품 공급을 정상화하고 매출 회복 기반을 마련하려면 기존 채무 조정과 별도로 당장 쓸 현금이 필요하다.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생계획이 인가되더라도 실제 영업 정상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현재 돈을 댈 주체는 정해지지 않았다. 홈플러스와 MBK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2000억원 규모 DIP 대출을 요구하고 있다. 메리츠는 1000억원 지원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조건을 달았다. 대주주인 MBK와 김병주 회장의 보증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머지 1000억원을 놓고도 입장이 갈린다. 메리츠는 MBK나 제3의 투자자가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대주주가 회생 의지를 자금과 보증으로 먼저 보여야 추가 손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
MBK는 김 회장의 사재 출연과 대출 보증, 외부 차입 등을 통해 이미 홈플러스에 자금과 신용을 제공했다는 주장고 반발하고 있다. 메리츠가 홈플러스 부동산의 선순위 담보권자인 만큼 청산을 통한 담보 회수보다 회생을 위한 금융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도 맞서고 있다.
양측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사이 홈플러스 영업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회사는 최근 영업을 중단한 37개 점포를 폐점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피해도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홈플러스 납품 중소상공인 150개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7%가 대금 정산 지연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미정산 납품대금은 평균 7억7400만원으로 집계됐다. 5억원 이상을 받지 못한 업체는 40.7%, 10억원 이상 미정산 업체는 24.0%였다. 납품일로부터 60일을 넘겨 대금 정산이 지연되고 있다는 응답은 98.0%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오는 30일이 홈플러스 회생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가 법원이 인정할 만한 2000억원 조달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달 3일 회생계획안 인가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는 9월3일까지 시한 연장이 가능하지만 법원이 회생절차 폐지 의견까지 요구하면서 추가 기회에 대한 기대감은 낮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일부 임금 체불은 해소됐지만 남은 사업 부문 회생에 필요한 자금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라며 "MBK와 메리츠가 2000억원 부담 방식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면 홈플러스 회생 시계는 청산 쪽으로 더 빠르게 기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