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호재와 악재에도 자산 가격이 통상적인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흐름이 나타났다. 대만 TSMC가 시장 전망을 크게 웃도는 실적을 냈지만 미국 반도체주는 동반 급락했고, 미국과 이란의 무력 공방이 격화했는데도 국제유가는 하락했다. 실적 개선 기대와 중동발 공급 불안이 가격에 먼저 반영된 뒤 새로운 재료가 나오자 매도세가 커진 모습이다.
17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0.20% 내린 5만2552.9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51% 하락한 7533.77,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47% 떨어진 2만5881.95로 마감했다.
대만 TSMC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힘입어 올해 2분기 시장 전망을 크게 웃도는 실적을 냈다. 그러나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요 반도체 종목에는 매도세가 집중됐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4.3% 하락했고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도 2.40% 내렸다.
메모리 반도체주의 낙폭은 더 컸다. 마이크론은 5.65%, 샌디스크는 12.63%, 시게이트테크놀로지는 10.00%, 웨스턴디지털은 9.15% 각각 하락했다. 인텔과 AMD도 각각 5.84%, 5.33% 내렸고 나스닥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13.69% 급락했다.
이날까지 실적을 발표한 S&P500 구성 종목 40곳 가운데 87%가 월가 예상치를 웃돌았다. 호실적에도 반도체주가 급락하면서 시장이 현재 실적보다 이미 높아진 기대와 주가 수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유가도 중동 정세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전장보다 0.9% 내린 배럴당 84.23달러에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의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0.8% 하락한 78.95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은 이란 남부 연안을 넘어 수도 테헤란 외곽과 내륙 지역으로 공습 범위를 확대했다. 이란도 중동 주변국의 미군 기지를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에 홍해 원유 수송로 봉쇄 준비를 지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호르무즈해협과 홍해가 동시에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다만 브렌트유는 미·이란 무력 공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 재개 이후 이미 배럴당 86달러대까지 오른 상태였다. 이후 85달러 안팎에서 등락하며 추가 충돌보다 향후 사태 전개를 지켜보는 흐름을 보였다. 중동 위험이 유가에 먼저 반영되면서 공방 격화만으로 추가 상승세가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반도체주는 깜짝 실적보다 높아진 주가 수준에 반응했고, 국제유가는 확전보다 앞서 반영된 공급 불안과 최근 상승분에 무게를 뒀다. 기대가 높아진 시장에서는 호재가 나와도 매도가 나오고 악재가 커져도 가격이 추가로 오르지 않는 '선반영 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