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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모바일 앱 경쟁력과 실적 쌓기에 치중해 보안 구멍을 방치하는 사이, 간편함을 내세운 ‘비대면 자유적금’이 보이스피싱과 중고거래 사기 범죄의 새로운 대포통장 우회 경로로 전락했다. 당국이 급하게 개설 제한 조치라는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지만, 정작 선량한 재테크족과 청년층만 금융거래에 불편을 겪게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별 자유적금 계좌 개설을 분기당 1인 최대 3개까지로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추가로 적금계좌 개설을 원하는 소비자는 영업점을 직접 방문해 증빙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해당 조치는 3분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적금 계좌 개설 요건을 전례 없이 강화한 이유는 은행의 자유적금 계좌가 사기 범죄자들의 자금 세탁과 은닉 통로로 악용되는 사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서 비대면 자유적금 계좌를 활용한 악성 사기 범죄가 잇따라 포착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한 사기범은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 허위 판매글을 올려 피해자 126명으로부터 1억2000만원을 편취했다. 또 다른 사기범은 콘서트와 프로야구 티켓, 전자기기 등으로 유인해 피해자 80명에게서 약 7000만원을 가로챘다. 사기범들이 자유적금 계좌를 수십 개씩 무차별적으로 만들어 범죄에 활용하면서, 당국의 계좌 조회나 추적이 원활히 되지 않아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입출금 통장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개설 목적 확인 등 대면 비대면을 막론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적금계좌는 저축 목적이라는 이유로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범죄 조직들은 이 허점을 뚫고 신분증 촬영 외에는 가입 장벽이 없는 비대면 자유적금을 대포통장 우회 경로로 악용한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 성과와 수신 잔액 확충 등 ‘눈앞의 실적 지상주의’에 급급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주요 은행들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나 상품 가입자 수로 판별되는 모바일 앱 경쟁력을 과시하기 위해 ‘최소 1000원으로 1분 만에 개설 가능’ 등 편의성만을 극대화한 상품을 앞다투어 출시해 왔다.
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간소화된 절차로 시장을 선점하자, KB국민은행의 ‘반려행복적금’이나 신한은행의 ‘알·쏠 적금’ 등 시중은행들도 잇따라 비대면 전용 상품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금융 대포통장 우회 가능성에 대한 내부통제나 리스크 검증은 뒷전이었다는 지적이다.
당국의 '분기당 3개 제한' 조치로 여러 은행 고금리 특판 적금을 쪼개어 가입하려던 자산 형성 목적의 청년층과 재테크족들은 역차별을 겪게 됐다. 소액을 매월 나눠 가입해 복리 효과와 이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적금 풍차돌리기’ 투자자들은 매달 새로운 적금을 찾아 가입해야 하므로 당장 3분기부터 발이 묶이게 된다.
다만 금감원은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마련했다. 범죄 악용 가능성이 낮은 월 납입한도 100만원 이하의 상품이나 본인 명의 계좌로만 납입 가능한 상품은 자유롭게 개설하거나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분기당 3개 제한 규제 역시 금융회사별로 각각 적용될 예정이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 금융소비자학과 교수는 “비례성의 원칙 차원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를 해온 고객에게도 제한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검토해야 한다”며 “편의성과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고려하는 한편 계좌 개설 제한 사유를 금융기관에서 명확히 안내하고 적용 기준도 투명하게 공개해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