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G D&A가 대한항공과 개발할 전자전기 형상 ⓒLIG D&A
대한항공이 캐나다 봄바디어 디펜스의 비즈니스 제트기 '글로벌 6500'을 공식 도입하면서 국내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대한항공의 군용기 개조 기술과 LIG D&A의 전자전 임무장비를 결합해 적 방공망과 지휘통신 체계를 원거리에서 무력화하는 전자전기를 독자 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전자전기는 적의 방공망과 지휘통신 체계를 무력화해 아군 전투기의 생존성을 높이는 현대전의 핵심 전략자산이다.
미사일이나 폭탄을 쓰지 않고 강력한 전자파를 사용하는 만큼 '미사일 대신 전파를 쏘는 비밀병기'로 통한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만 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 장벽이 높아 미래 수출 전략자산으로도 가치 있다는 평가다.
16일 봄바디어 디펜스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최근 서울에서 '글로벌6500' 2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도입되는 기체는 국내에서 전자전 임무에 맞게 후속 개조를 거쳐 대한민국 공군의 스탠드오프 재머(SOJ) 전자전기로 운용될 예정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해 LIG D&A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약 1조9000억원 규모의 공군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을 수주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개조와 감항인증을, LIG D&A는 전자전 임무장비 개발을 담당해 2034년까지 총 4대의 전자전기를 제작한다.
▲ 전자전기 형상 ⓒ방위사업청
최근 현대전 양상을 보면 적의 방공망을 먼저 무력화하지 못하면 전투기와 폭격기, 무인기 모두 정상적인 작전을 수행하기 어렵다.
전자전기는 적 레이더와 지휘통신망을 교란해 방공체계를 무력화하고, 아군 항공기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해군의 EA-18G '그라울러'다. 그라울러는 적 방공망 제압(SEAD) 임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전자공격기로, 최근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생포 작전에서도 적의 통신과 감시체계를 무력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민국 공군이 개발하는 SOJ 역시 같은 개념이다. 적 지대공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 레이더와 지휘통신망을 교란하고, 데이터링크를 통해 전투기와 조기경보통제기 등 다른 전력과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며 합동작전을 수행한다.
특히 군은 재밍 성능 요구조건으로 미군 EA-18G 그라울러의 약 150㎞를 넘어서는 250㎞ 수준의 원거리 재밍 능력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봄바디어의 글로벌 6500 ⓒ봄바디어
대한항공이 도입한 글로벌 6500은 길이 약 30m, 날개폭 약 29m의 대형 비즈니스 제트기다. 최대 17명이 탑승할 수 있으며 롤스로이스 '펄(Pearl) 15' 엔진을 탑재해 최대 마하 0.90의 속도와 5만피트 고고도 비행, 대륙간 항속 능력을 갖췄다.
무엇보다 군용 특수임무기로 개조하기 적합한 플랫폼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최신형 항공기임에도 디지털 플라이바이와이어(FBW)가 아닌 기계식 비행조종계통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조종사의 입력은 케이블과 푸시로드를 통해 유압식 조종장치로 전달되는 구조로, 전자전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기적 간섭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전기가 '비밀병기'로 불리는 이유는 기체보다 내부에 탑재되는 전자전 체계에 있다.
전자전 장비는 적국 레이더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전파를 실시간으로 생성해 교란하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가 핵심 경쟁력이다. 각국은 이러한 기술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분류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며, 동맹국 사이에서도 장비 사양과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비공개로 유지된다.
이에 해외 기술에 의존할 경우 후속 성능 개량이나 소프트웨어 수정, 유지보수 과정에서 원 제작사의 승인과 추가 비용이 필요할 수 있어 독자 기술 개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자전기는 단순히 전자장비를 항공기에 싣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강력한 전파를 발생시키는 재머와 각종 안테나, 냉각장치, 전력공급장치 등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플랫폼과 체계통합이 필수적이다.
▲ 조현철 대한항공 방산사업부 부사장(오른쪽)과 장훈석 봄바디어 방산사업부 영업이사 ⓒ봄바디어
전자전 항공기는 항공기와 장비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체계로 작동해야 한다. 기체 설계와 전자전 장비 개발이 초기 단계부터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또한 과거 전자전 장비는 특정 레이더 한 개의 주파수를 교란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적 방공망의 주파수 변화에 맞춰 실시간으로 대응하면서 여러 목표를 동시에 재밍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장비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소비량과 발열도 증가하기 때문에 제한된 항공기 공간 안에 각종 장비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면서도 기존 비행 성능을 유지해야 하는 통합 역량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장비가 지나치게 크거나 무거우면 동체 보강 범위가 커지고 무게중심이 바뀌어 비행 특성이 달라질 수 있어, 전자전 장비는 소형화와 경량화가 필수적이며, 구조 개조 역시 최소화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업에서 국내로 인도된 글로벌 6500을 전자전 임무에 맞게 개조하고, 이후 항공기의 구조 안전성과 비행 성능을 검증하는 감항인증까지 수행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현재 전자전기는 미국 등 일부 국가만 독자 개발 능력을 보유한 대표적인 전략무기다. 독자 기술을 확보하면 후속 성능 개량과 유지보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 기술 의존도도 낮출 수 있다.
향후 전자전기 수출 시장이 열릴 경우에는 전투기와 조기경보통제기, 무인기 등 다른 무기체계와 연계한 패키지 수출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항공기 개조와 체계통합, 전자전 장비를 모두 독자적으로 확보하게 되면 유지보수는 물론 미래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