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개선' 강조하며 '경영권 분쟁' 일으켰지만...사외이사 후보 중 일부 친분에 모친, 매형 등 또 다른 가족경영 우려"회사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사리사욕 위한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 흔들어"노조도 박 상무 반발 성명... 박찬구 회장 'ESG경영' 카드로 국민연금 환심
  • ▲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좌측은 이병남 사외이사 후보자, 우측은 최정현 사외이사 후보자. ⓒ성재용 기자
    ▲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좌측은 이병남 사외이사 후보자, 우측은 최정현 사외이사 후보자. ⓒ성재용 기자
    '거버넌스 개선'을 주창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박철완 상무의 '조카의 난'이 찻잔 속 미풍으로 그칠 전망이다. 사외이사 후보 중 일부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모친이나 매형 등을 업을 경우 역시 투명성 제고 등 '거버넌스 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박찬구 회장은 노조가 박 상무에 대한 반발 성명을 낸 데 이어 임금 단체 협약까지 일임하면서 힘이 더 실리게 됐다. 또 ESG 강화 등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만큼 앞서 반대를 했던 국민연금도 이번에는 명분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는 11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주제안 취지를 밝혔다.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이후 박 상무가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6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양측의 표 대결이 본격화했다.

    우선 이번 주주제안이 집안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박 상무는 "안타깝게도 일각에서는 제 논의의 진위를 살펴보는 대신 '조카의 난'이라는 한 마디로 치부하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기업은 오너 일가의 전유물이 아니며 기업 경영은 '누구누구의 난'으로 요약될 만큼 가볍고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현재 이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컸기 때문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박 상무는 "기업 경영은 수많은 관계자의 이해가 달린 문제인 만큼 세간의 오해를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주주제안이라는 방식으로 현 이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 경영진과 이사회가 과연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더 큰 가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달 체결된 금호리조트 인수 계약을 들었다.

    박 상무는 "금호리조트는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과 연관성이 없고, 시너지가 발생할 수 없는 데다 경쟁자의 가격보다 500억~1000억원 이상 높게 체결됐다"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다면 과연 이런 인수가 가능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현 이사회는 이런 부적절한 투자 결정을 걸러내거나 경영진의 과거 배임 행위에 대해 지배주주의 경영권 남용 견제에 실패했으며 기업 가치를 저해하는 리스크 해소에도 무력했다"면서 "이사회가 견제하는 대신 방임하고 회사에 개선 요구를 멈출 때 그 기업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상무는 △금호리조트 인수 중단 △저평가된 기업 가치의 정상화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을 통한 기업 거버넌스 개선 등 세 가지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5년까지 시가총액 20조원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상무 측은 올해 임기가 만료된 사외이사를 대신해 ▲이병남 전 보스턴컨설팅그룹 코리아오피스 대표 ▲민 존 케이(Min John K.) 덴튼스 리(Dentons Lee) 외국 변호사 ▲조용범 페이스북 동남아시아 총괄 대표 ▲최정현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등 총 4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이병남, 민 존 케이 후보는 감사위원 후보다.

    문제는 조용범 대표의 경우 박 상무와 하버드대학 MBA 동문이며 수학 시기도 겹친다는 점이다. 또 이병남 전 대표의 경우 연세대 동문이자 보스턴컨설팅그룹 재직기간이 겹친다.

    이와 관련, 금호석유화화그룹 노조는 "박 상무 개인과 친분이 있는 자들로, 진정 우리 금호석유화학을 위한 추천인지 그 의도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박 상무는 "회사가 아닌, 개인 차원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다 보니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과 같은 전문 시스템이 없어 의뢰를 통해 20여명의 후보자를 추렸다"며 "이병남 후보는 M&A나 전략적인 체계 수립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고, 조용범 후보는 업계 최고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문가"라고 해명했다.

    뿐만 아니라 우호 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는 박 상무의 처가와 누이들까지 참전하게 될 경우 "기업은 오너 일가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말한 본인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故박정구 전 회장은 화려한 혼맥으로 유명하다.

    장녀 박은형씨는 故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차남 김선현 아도니스 부회장과, 차녀 박은경씨는 故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장남인 장세홍 한국철강 대표와 혼인했다. 삼녀 박은혜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와 결혼했다.

    또 박 상무 본인은 GS그룹 방계회사인 코스모그룹과 사돈을 맺었다. 박 상무는 2014년 9살 연하의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 차녀 허지연씨와 혼인했다.
  • ▲ (좌로부터) 노태영 울산수지공장 노조위원장, 이치훈 여수공장 노조위원장, 문동준 금호석유화학 사장, 이용재 울산고무공장 노조위원장, 김선규 금호석유화학 부사장 등이 임금 단체 협약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 (좌로부터) 노태영 울산수지공장 노조위원장, 이치훈 여수공장 노조위원장, 문동준 금호석유화학 사장, 이용재 울산고무공장 노조위원장, 김선규 금호석유화학 부사장 등이 임금 단체 협약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이에 반해 박 회장 측은 노조가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날 금호석유화학 노조(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금호석유화학노동조합) 산하 여수공장, 울산수지공장, 울산고무공장 등 사업장 노조는 공동입장문을 통해 "회사가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말도 안 되는 주주제안과 사리사욕을 위한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를 흔들고, 위기로 몰아가는 박철완 상무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날 오전에는 임단협을 사측에 위임하면서 사측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치훈 여수공장 노조위원장은 "코로나19로 노동 현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권 관련 논란이 확대됨에 따라 올해는 더욱 각별한 마음으로 협상권을 회사에 전부 위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 스스로도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국민연금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선 △이정미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 고문변호사 △박순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최도성 가천대학교 석좌교수 △황이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등 4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최도성, 황이석 후보는 감사위원 후보이기도 하다.

    전문성 등에서는 박 상무 측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박 상무 측은 한 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사측은 두 명을 추천했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이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이는 ESG 추세에 맞춰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기 위해 여성 후보를 두 명 추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내이사 선택에도 신중을 기했다. 사측은 현재 금호석유화학 영업본부장인 백종훈 전무를 후보로 추천했다. 백 전무는 1988년 금호쉘화학에 입사해 성과를 인정받아 온 정통 '금호석화맨'이다.

    노조가 사측에 힘을 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ESG경영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ESG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국민연금을 겨냥했다. ESG위원회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향후 생길 수 있는 기업·주주가치 훼손을 예방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 상무는 10.0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박 회장 측의 지분율은 박 회장 6.69%를 비롯해 아들 박준경 전무 7.17%, 딸 박주형 상무 0.98% 등 모두 14.86%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총에서는 지분 8.16%를 보유한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50.48%의 지분이 있는 소액주주들의 선택이 이번 경영권 분쟁의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박 상무의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10년여 동안 전혀 관심을 드러내지 않다가 갑자기 주가를 올려서 주주들에게 인정받겠다고 나온 것에 대한 비난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늘 기자간담회에서도 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경영에 대한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박 상무는 305만여주를 갖고 있다. 표 대결에서 실패해 사측 안건대로 주총이 끝나더라도 주당 4000원(대주주)을 배당받으면 단순 계산으로 122억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박 상무의 저의에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상무와의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백기사'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던 권민석 아이에스동서 대표는 이번 경영권 분쟁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에스동서 측에 따르면 권민석 대표와 박 상무는 동문수학한 사실이 없으며 개인 투자 차원에서 매입한 주식도 지난해 말 주주명부폐쇄 이전에 매도해 지금은 의결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