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저가공세 직격탄…국내 생태계 붕괴태양광사업 사상 최대 영업익 불구 폴리실리콘 '적자'생산원가 절반 수준… "가동률 높일수록 '손실' 눈덩이
  • 태양광 에너지. ⓒ한화에너지
    ▲ 태양광 에너지. ⓒ한화에너지

    국내 1위 태양광 폴리실리콘 업체 OCI가 국내 공장을 멈춘데 이어 한화그룹도 손을 떼기로 했다. 국내 단 두 개뿐인 폴리실리콘 제조업체가 모두 국내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중국발 저가공세로 국태 태양광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태양광 산업의 '쌀'로 불리는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산업 밸류체인 중 가장 앞선 소재로, 잉곳·웨이퍼 생산에 쓰인다. 잉곳·웨이퍼는 셀·모듈로 만들어져 최종 태양광 발전에 투입된다. 국내에서는 OCI(연산 7만9000톤)와 한화솔루션(1만5000톤)이 사업을 영위해왔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수년째 적자를 기록 중인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태양광사업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원료인 폴리실리콘 사업은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자 사업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다.

    폴리실리콘 생산설비의 잔존가치는 지난해 실적에 모두 반영됐다. 손실규모는 3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순이익은 마이너스(-) 2489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대비 적자전환했다.

    한화솔루션 측은 "폴리실리콘 판매가격이 생산원가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상황이라 가동률을 높이면 높일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 연내 사업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폴리실리콘 사업의 연간 적자 폭은 500억~800억원 수준"이라며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준비 과정을 거쳐 연내 철수를 완료하면 내년부터는 더 이상 적자가 실적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화솔루션의 철수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지난해부터 여수 폴리실리콘 공장의 가동률을 낮추면서 철수를 검토해왔다.

    또한 OCI가 최근 적자가 지속되는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국내 사업을 철수했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 달성이 가능한 OCI조차 버티지 못하는 사업에서 한화솔루션이 적자를 감내하면서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의 폴리실리콘 연간 매출은 OCI의 8% 수준에 불과하다.

    OCI는 기존에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던 군산공장은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생산으로 전환하고,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을 생산하기로 했다.

    당시 OCI는 군산공장 중단에 대해 "최소 25% 이상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며 "중국의 원가구조 등에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표고, 말레이시아 공장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공장에서의 폴리실리콘 생산은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자료사진. 지붕형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된 KCC 대죽공장. ⓒKCC
    ▲ 자료사진. 지붕형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된 KCC 대죽공장. ⓒKCC

    이들 모두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폴리실리콘 시장은 6조원 규모로, 이 가운데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64%로 추산된다. 2008년을 기점으로 기존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업체들이 태양광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OCI 같은 후발업체들이 잇따라 진출하면서 시장이 대폭 커졌다.

    이후 중국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 등을 업고 우후죽순 난립하면서 전 세계 폴리실리콘 시장은 극심한 과잉공급에 시달렸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폴리실리콘 제조시 전기요금은 원가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현재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1kWh당 10센트인데, 2009년보다 7.1% 올랐다.

    반면 중국 서부 지역의 경우 국내보다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업체들은 저가로 물량을 쏟아냈다. 제조원가부터 높은 국내 업체들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달 중국 상무부가 한국과 미국산 태양광 폴리실리콘에 반덤핑 관세를 계속 물리기로 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OCI에 4.4%, 한화솔루션에 8.9%의 반덤핑 과세를 부과해왔고, 최근 과세 기조를 2025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미국도 수입 태양광 셀과 모듈에 30%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실시했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 1위 태양광 폴리실리콘 업체는 중국 GCL로, 연간 생산능력이 13만5000톤이다. 3위 OCI의 연간 생산능력이 7만9000톤임을 감안하면 격차가 상당하다. 전 세계 시장에서 △독일 바커 △미국 햄록 △일본 도쿠야마 △OCI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태양광시장 조사업체 PV인사이트에 따르면 19일 기준 고순도(9N-/9N+) 폴리실리콘 가격은 ㎏당 7.07달러다. 호황기였던 2008년 40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폴리실리콘은 중국 업체의 공급 폭격에 가격이 폭락했다. 폴리실리콘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당 13~14달러로 알려졌다. 사실상 만들수록 손해가 쌓이는 셈이다.

    올해 전 세계 폴리실리콘 생산량은 약 62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실제 시장 수요는 40만톤 수준에 불과해 20만톤의 과잉공급이 예상된다.

    OCI 관계자는 "도저히 중국과 물량 및 가격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산에 대한 중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까지 연장되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며 "사업 철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 자료사진. '2017 서울 태양광 엑스포'에서 한 중소기업이 출품한 태양광 패널 클리너를 참가자가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자료사진. '2017 서울 태양광 엑스포'에서 한 중소기업이 출품한 태양광 패널 클리너를 참가자가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 붕괴에 대한 우려다.

    태양광산업은 폴리실리콘(태양광 원재료 가공)→잉곳(폴리실리콘을 녹여 결정으로 만든 것, 원통형 덩어리)→웨이퍼(원판, 얇은 판)→셀(태양전지)→모듈(태양전지를 한 데 모아놓은 패널)→발전소(발전시스템)로 이뤄졌다.

    과거 10년 전만하더라도 국내 태양광시장은 밸류체인 전반을 영위했지만, 잉곳·웨이퍼 등을 생산하는 국내 태양광 중간재 업체들이 중국의 치킨게임을 버티지 못하고 2012년부터 줄도산했다. OCI와 한화솔루션마저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산업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중국산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폴리실리콘과 셀, 모듈 중간 단계를 잇는 잉곳과 페이퍼는 중국 업체가 강한데다 이제 이 생태계의 뿌리 격인 폴리실리콘마저 중국에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 글로벌 태양광시장이 커질수록 한화와 OCI 같은 업체들이 중국 폴리실리콘 업체들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국내 2위 폴리실리콘 제조업체였던 한국실리콘은 이미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2018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넥솔론과 SMP는 2017년 파산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잉곳과 페이퍼를 제작하던 웅진에너지는 지난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셀 부분 기술력도 중국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모습"이라며 "태양광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잉곳과 셀, 모듈 등 수요가 늘면서 올해만 버티면 폴리실리콘 가격이 회복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생태계가 빠르게 악화되면서 원재료에 대한 중국시장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태양광산업 보호정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과의 원가 격차가 커 정부가 이제 와서 지원책을 마련하더라도 '밑빠진 독에 불 뭇기'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현재로서는 중국 태양광 소재의 가격경쟁력을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 국내 태양광 소재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전기료와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재생에너지의 주요한 축인 태양광 산업이 무너지면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5%까지 늘리겠다는 정부의 에너지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전환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본격적으로 높이기도 전에 중심축인 태양광 생태계에 문제가 생기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