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대 가능성 배제 못해"… 농축수산물 내림세는 하방요인국제유가·환율 상승 등 대외변수 압력… 근원물가도 2% 진입 눈앞'위드 코로나'도 상승압력 변수… 대선 앞두고 포퓰리즘 남발 가능성도
  • ▲ 물가 비상.ⓒ연합뉴스
    ▲ 물가 비상.ⓒ연합뉴스
    미친 집값에 이어 소비자물가도 이달 3%대를 기록하며 10년 만에 최악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분기 한시적으로 2%를 웃돌 거라던 정부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한 총력 대응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근원물가 역시 2%대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을 남발할 수 있어 고공행진 중인 물가가 호락호락 잡힐지는 미지수다.

    기획재정부는 15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소비자물가와 관련해 석유류·개인서비스 상승세가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83(2015년=100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5% 올랐다. 2%대 상승률은 지난 4월(2.3%) 이후 6개월째 이어졌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년11개월 연속 2% 이상을 기록한 이후 최장 기록이다.

    기재부는 그동안 물가 상승률을 견인했던 농·축·수산물은 상승 폭이 축소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달 농산물 가격은 채소류(-12.2%) 하락에 힘입어 1년 전보다 0.6% 내렸다.

    하지만 축산물은 13.9% 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달걀(43.4%)이 상승을 이끌었다. 1월(15.2%) 이후 아홉달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석유류는 휘발윳값 소폭 하락에도 자동차용 LPG 가격 등이 상승하며 오름 폭이 소폭 확대했다. 개인서비스도 원재료 상승 등이 반영되며 외식 물가 오름 폭이 커졌다.

    김영훈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10월 물가와 관련해 "지난해 통신비 지원에 따른 기저효과와 유가, 환율 오름세로 상방 압력이 높아 3%대 물가상승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농·축·수산물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는 것은 하방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 ▲ 9월 소비자물가 2.5% 상승.ⓒ연합뉴스
    ▲ 9월 소비자물가 2.5% 상승.ⓒ연합뉴스
    이달 물가 상승률이 3%대를 넘는다면 2011년(4.0%) 이후 10년 만의 최고치가 된다. 애초 정부는 올 2분기 코로나19 쇼크에 따른 기저효과로 말미암아 물가가 2%를 웃돌겠으나 일시적 현상에 그칠 거라고 했었다. 하반기부터 기저효과가 빠지고 햇과실 등이 공급되면 연간으로는 물가안정목표(2%)를 웃돌 가능성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2012년(2.2%) 이후 9년 만에 2%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21일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한국 소비자물가 전망을 2.2%로 기존보다 0.4%포인트(p) 올려 잡았다. 앞서 한국은행도 8월26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종전(5월·1.8%)보다 0.3%p 높은 2.1%로 수정한 바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다음 달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해 물가 상승 압력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 과장은 "위드 코로나 전환 후 이동량 증가 등 요인이 겹치며 수요 측 압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물가 상승 요인이 세계 공급망 차질,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등 대외적인 변수에 더 노출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14일(미 동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0.87달러(1.08%) 오른 배럴당 81.3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2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84달러 수준으로 오르면서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발표한 월간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앞으로 몇 달간 추가 석유 수요가 하루 최대 5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유가 상승은 기업 생산 비용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가공식품 가격 인상에도 영향을 준다.

    원/달러 환율이 1190원대에 다가서는 등 원화 가치 하락도 국내 물가엔 악재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4.4원 내린 달러당 1182.4원에 거래를 마쳤다.
  • ▲ 달걀.ⓒ연합뉴스
    ▲ 달걀.ⓒ연합뉴스
    물가 안정에 비상이 걸린 정부는 총력 대응에 나선다는 태도다.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은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2.5%)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좀처럼 잡히지 않는 달걀값과 관련해 "연내 공판장(도매시장) 2곳을 시범 운영해보고 점차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차관은 지난달 29일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선 "이미 결정된 공공요금을 제외한 나머지 요금은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며 11월 도시가스 요금 인상 가능성에 제동을 걸었다. 재정당국은 가스(소매), 상하수도, 시내버스·지하철, 쓰레기봉투 등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지방공공요금도 4분기 동결을 원칙으로 적극 협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물가가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계절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물가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려고 작성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가 지난달 108.25로, 1년 전보다 1.9% 상승했다. 2016년 4월(1.9%) 이후 5년여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지난 3월 이후 7개월 연속 1%대를 유지했다. 오름 폭도 커져 2%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소비자물가가 갑자기 뚝 떨어지진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21일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주요 20개국(G20)의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5%p 높인 3.9%로 전망하며 "(글로벌) 소비자물가가 내년 4분기 정점을 찍은 후 공급 능력이 향상되면서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상가상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돈 풀기 경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선거를 앞두고 현금살포성 포퓰리즘 정책을 공식처럼 펼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