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 국면에도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외환보유액 방어력 논란 속 정책 효과 미미수입물가·자영업 연체로 번지는 환율 충격단기 대책 넘어 구조적 해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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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굳히며 IMF 외환위기 당시 연평균 환율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는 연일 환율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외환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시장에서는 "의지는 보이지만 쓸 수 있는 실탄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23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394.9원이었다. 당시 환율은 한때 1900원대까지 급등했지만, 구조조정과 IMF 관리 체제 속에서 연간 평균은 1400원 초반에 머물렀다.반면, 최근 환율은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1480원 안팎에서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 연평균 기준으로 IMF 시절을 웃돌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시장의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다.환율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배경은 구조적이다. 글로벌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만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0대 후반으로 낮아졌지만,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달러 강세가 아닌데도 원화 가치가 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정부와 금융당국은 외환 건전성 부담금 한시 면제, 외화 지급준비금 이자 지급,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 활용 등 전방위 대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민간의 해외 투자 수요를 행정적으로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개인 투자자와 연기금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출 기업들 역시 불확실성을 이유로 달러를 시장에 적극적으로 풀지 않고 있다. 달러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구조다.문제는 외환보유액의 실질적 방어력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300억달러로 장부상 적지 않아 보이지만, 연간 수입액과 비교하면 약 7개월분에 불과하다. 일본과 중국이 각각 14~17개월분 수입을 감당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을 보유한 것과 대비된다. 외환시장 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고환율의 부담은 이미 실물경제로 확산되고 있다. 달러 기준 수입 물가는 하락했지만 원화 기준으로는 오히려 상승하면서 환율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과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소비자 물가 압박이 커지고, 기업들도 원가 부담 증가를 호소하고 있다.여기에 고금리와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자영업자의 재무 상태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은 1.76%로, 장기 평균(2012년 이후 1.41%)을 웃도는 높은 수치다. 매출이 작은 영세 사업자와 종사자 없는 1인 사업체를 중심으로 연체율 상승 폭이 두드러진다. 환율 상승에 따른 비용 압박이 고금리 부담과 맞물리며 취약 부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전문가들은 지금의 고환율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탄 없는 방어와 당국의 구두 개입이 반복될수록 환율은 더 높은 수준에서 굳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한 외환 전문가는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 약세가 지속된다는 점은 구조적 신뢰 문제를 반영한다"며 "외환보유액 확충과 정책 기조의 일관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1400원대 환율이 새로운 기준선으로 굳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