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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박정희가 민주건설자고 김대중이 민주파괴자인가?
역사는 5.16을 구국의 결단으로 높게 평가할 것이다.
조영환(올인코리아)
5월 중순에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두 사건이 있다. 소위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과 김대중의 5.18광 주사태이다. 이 두 사건을 어떻게 풀이하는가에 따라, 독재세력의 부역자가 되거나 민주화세력의 부역자가 되기도 하고, 민주팔이가 되거나 민주수호자가 되기도 한다. 이 두 사건은 '제도적 권위를 인정하고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책임적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책임과 자유를 조화시킨 성숙한 민주주의를 타도하는 군중선동'을 판가름하는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정희는 '사회적 책임과 질서를 부정하는 방자한 군중과 탐욕적 군중선동가들을 제압한 책임적 자유민주투사'이고, 김대중은 '직접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위선적 군중선동가'로 판명났다. 세칭 독재자 박정희의 민주투사적 속성과 세칭 민주투사 김대중의 군중선동성은 앞으로 더 대조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박정희는 권위주의적 전통문화가 현대화를 통해 서구문화로 바뀌는 한국사회의 격변상황, 王朝와 식민지 생활로 인해 습득된 한국인들의 굴종과 저항을 반복하는 심성, 그리고 변동사회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군중인간들의 방자한 깽판성 등을 고려하여, 李承晩이 깔아놓은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비난을 각오하고 군사혁명을 자행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 후에 분출하는 정치꾼들의 권력욕과 군중들의 이상적 요구사항들이 뒤엉켜서 무법천지의 혼란상황이 된 한국사회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치안과 국방이 부실했다. 그 결과 1960년 당시에, 대다수 한국인들이 사회질서를 잡아주는 군사혁명에 찬성했을 정도로, 자칭 민주투사들에 의해 한국사회에는 '책임적 민주주의'가 강간당하고 있었다. 군중의 반란(revolt of mass)이 벌어진 불행한 사회적 상황이 자칭 '불행한 군인' 박정희를 탄생시킨 것이다.
4.19학생봉기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학생의거의 주역들은 이승만 독재정권 이후에 민주당 (장면)정부가 이상적 민주사회를 구현할 것으로 착각했다. 군중의 수준이 불변한데, 어떻게 이승만 정권 종식 후에 이상적 민주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착각했는가. 학생의거 主役들은 떼법으로 재판에 개입하는 등 국가의 법치와 사회의 질서를 '민중의 뜻'에 예속시켰고, 결국 한국사회를 기초적 법질서도 없는 무법천지로 만들게 되었다. 법치가 군중의 떼법에 굴복하니까, 정부의 권위는 추락하고 공권력의 위력은 사라지고, '힘이 정의(might is right)'라는 야만의 법이 통하는 상태로 전락된다. 박정희 시해 후와 마찬가지로, 이승만 하야 후에도 한국사회는 군중의 분노와 욕구가 법으로 둔갑하는 무정부상태가 된 것이다. 군중의 쿠데타가 벌어진 이런 무정부상태에서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고민하는 애국민들은 저절로 군대의 출현을 고대하게 된다.
민주당에 가까운 정치행보를 보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5월 1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장군의 거사에 대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당시 기자였던 나는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민주당 신ㆍ구파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국민학생(초등학생)과 경찰관까지 데모하는 지경이었다" "혁명이 일어나면 총리가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당시 장면 총리는 그렇지 않았다. 주한미국 대사관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는 수녀원에 숨어 버렸다. 그런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었겠는가"라며 "(5.16은 쿠데타인가 혁명인가라는 질문에) 불가피한 군사혁명이었다. 나중에 박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추진하고 장기 집권을 하면서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내가 보기에는 군사혁명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들이 나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라 구국적 혁명이다.
군중연구가인 나의 스승 신유길 박사는 "(이승만 정권 종식 후에 등장한) 장면 정권은 '독재적'이라고 규탄받을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삼가한 나머지, 경찰력을 크게 약화시켰다"며 "학생들은 유토피아의 환상을 소유하고 있었을 따름이고, 현재와 미래 사이에 놓여져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탈몬(J.L. Talmon)이 묘사한 18세기 후반의 불란스 사회가 경험하였던 무정부주의적 상황과 비슷하다"며 "탄압에 저항할 수 있는 민중의 권리가 무정부주의로 발전하였다... 정부의 수반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으며 외부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헌법의 권위가 군중들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비합리적 충동이 이들의 행동을 지배했으며,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며 이승만 하야 후 무법천지의 한국사회와 무정부상태의 불란스를 비교했다. 정부권위와 사회질서의 실종 상황은 독재정권 탄생의 전야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후부터 1961년 장면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대학생들에 의해서 51회의 시위가 벌어졌으며, 고등학생들에 의한 시위는 117회나 발생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이승만 정권 붕괴 후에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 10개월 동안에 2,000 여회의 시위가 벌어졌고, 참가한 연인원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즉 장면 정권 하에서 하루에 평균 7.3회의 시위에 3870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하는 군중현상이 박정희 장군을 고대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위천국이 되면 멀쩡한 시민도 천박한 깽판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구스타브 르봉의 지적처럼 군중사회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교양을 가진 인간인데, 군중 속에서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짐승과 같은 야만인'으로 돌변한다. 이런 야만적 군중현상을 박정희는 목도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애국자들이 從北좌익세력의 준동과 무기력한 중도정부를 구경하듯이...
이승만 정권 붕괴 후에 한국사회는 오르테가 가세트가 규정한 '민주적 폭군(democratic tyranny)이 만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군중들이 폭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한국사회를 지키는 치안의 기준은 國法이 아니라 군중의 떼법(mob rule)이었다. 사회분야들에 권위적 전문가의 주장은 군중들의 무지와 억지에 힘을 쓰지 못하고, 목소리가 높은 군중인간이 이승만 하야 후의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었다. 제도적 권위를 무시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무책임한 군중인간들에 의한 과잉 민주주의(over-democracy)가 이승만 하야 후에 박정희의 등장을 촉구하고 있었다. 책임적 자유민주주의는, 오르테가 가세트가 주장한 것처럼, 법률의 존중과 개인의 자제력을 전제로 하는데, 이승만 하야 후에 박정희 앞에는 反민주적인 군중의 횡포(독재)가 벌어졌다.
이승만 하야 후의 한국사회나 박정희 피살 후의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방자한 군중들의 정치적 요구나 깽판은 개발도상국가의 민주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민주화에 필요한 전제조건이지만, 민주화를 성숙시키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독재타도는 불의에 대한 혈기만 있으면 되지만, 자유를 부여받은 군중인간들이 책임과 질서 의식을 가지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과 개인에 대한 권리의식이 변증법적으로 판단에 조화되는 성숙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화염병을 들고 치안을 파괴하고 손가락을 잘라 국방을 거부한 민주투사들은 민주주의에 부적합하다. 오늘날 군대미필자들과 민주깽판꾼들이 정치권에 주류를 형성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종언을 예고한다. 김대중 부류의 군중선동꾼들이 제도권을 장악해서, 거짓과 폭력을 확산시킨다.
운동권 출신들이 한국의 정치권에 침투 장악하면서, 억지와 깽판이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급격하게 쇠락하고 대한민국이 亡國지경에 이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민주주의에 기본이 자유와 민주가 아니라 안보와 치안인 것을 민주팔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재적으로 보는 듯한 정상적 치안행정을 소위 민주정부가 하지 않기 때문에, 공권력은 무력화(無力化)되고, 국방과 치안은 무너져서, 결국 자유민주주의는 망가지는 것이다. 독재정권이나 전체주의정권이 들어서기 전 단계에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방자한 군중들이 억지와 깽판을 실컷 치는 것은 반복되는 역사적 현상이다. 군중들의 오만방자한 지랄발광이 결국 독재와 전체주의라는 업보를 받는다. 국군과 경찰과 국정원의 질서유지를 독재로 해석하는 군중들이 독재나 戰亂을 자초한다. 광우난동사태와 같은 반란극을 일으킨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을 제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화의 첫 걸음이다.
오르테가 가세트가 말한 '무자격자에 의한 주권행사(the sovereignty of the unqualified/과잉민주주의)'의 사회병리증상을 사무엘 헌팅턴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유가 아니고, 합법적인 공중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가 없어도 질서를 지킬 수가 있다. 그러나 질서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 정치권력을 제한하기 이전에, 정치권력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더 우선적 과제이다.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도저히 능률적인 정부가 없다. 소외당한 지식인들과 깽판을 치는 학생들에 의해서 사회질서가 유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데이비드 엡터는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곳에서는 공동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권위주의적 강제수단(institution of coercion)이 필요하다"고 처방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민주팔이들이 연출한 군중暴亂의 위기상황에서 이 '강제수단'을 제공한 헌신적인 민주화 영웅이었다.
이승만 정권 붕괴 후에 장면의 민주당 정권 하에서 벌어진 이런 무법천지의 군중현상이 만연된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최소한 필수적인 법치와 국방을 유지하려고 박정희가 국사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비해 김대중은 이승만이 물러난 4.19 이후와 박정희가 시해된 10.26 이후에 한국사회에 벌어지는 혼란된 사회분위기를 책임적 민주주의 사회로 고치는 자유민주투사가 아니라, 그런 혼란상황에 편승한 군중선동가였다. 민주의 이름으로 혼란된 상황을 더 혼란시키는 짓을 하다가 결국 5.18광주사태까지 벌인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시민들만이 할 수 있는 성숙한 정치제도라면,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군중선동가로 낙인되어 마땅하다. 박정희 시해 후에 김대중이나 김영삼은 책임적 민주투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도 김대중 패당은 언론과 교육에 침투해서 온갖 거짓과 조작과 왜곡을 즐긴다.
비록 박정희의 3선개헌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해친 악덕을 품고 있지만, 박정희의 5.16은 군사쿠데타로만 폄하하기 힘든 구국적 혁명이었던 것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를, 못 먹을 광우병 덩어리라고 방송이 선전하고 김대중 패당이 군중을 선동해서 100일이나 反정부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에 장면의 얼굴이 겹치고 박정희의 결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면 정권은 '독재적'이라고 규탄받을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삼가한 나머지, 경찰력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역사적 진단은 이명박 정부를 연상시킨다. 광우난동 사태의 주동자들을 반란죄로 처벌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의 군사혁명을 국민들에게 그리워하게 만드는 국정운영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에 의해 민주주의의 기초인 法治가 무너졌는데, 김대중 패당의 민주팔이들은 무슨 낮짝으로 민주와 평화를 논하는가?
지금은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때보다 남한사회에 從北좌익세력이 훨씬 더 많이 번성했다. 김대중-노무현 종북좌익세력이 10년 집권한 뒤에 한국사회의 대부분 영역들에는 종북좌익세력이 똬리를 틀고 반란과 반역의 세뇌와 선동의 망국극을 벌이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적화통일을 막을 박정희와 같은 결단의 민주투사를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오르테가 가세트나 사무엘 헌팅턴이 주장한 것처럼,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정치제도라면, 국방력과 공권력에 치명적 한계가 발견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와 평화를 외친 김대중-노무현 패당에 의해, 사회질서가 혼란되면서,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민주팔이들에 의해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김대중 패당의 선동질에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본 국민들(60%)이 박정희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고 싶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좌익정권 이후에, 사법기관이 간첩을 잡아넣지 못하도록 하는 망국적 판결을 내리고, 교육기관이 반역적 세뇌교육을 시킨다고 비난받고, 언론기관이 反국가적 선동기관이 되었다고 질타받고, 종교단제가 反정부세력의 아지트라고 비난받고, 문화예술계는 反정부 정서를 확산시킨다는 걱정거리가 되고, 경제분야에서 김대중 패당의 도둑질이 벌어진다는 여론이 일고, 군대는 국방력 강화 대신에 슬림화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인이 나타나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는가? 김대중 패당의 자유민주주의 파괴와 대한민국을 북괴에 굴복시키려는 利敵행위를 고치려면 군사혁명밖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불행하게도, 김대중-노무현-김정일 추종 종북좌익세력을 척결하고 사회질서와 국가안보를 강화시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책임과 질서가 있는 성숙한 단계로 진입시킬 (박정희와 같은) 혁명적 민주투사가 오늘날 한국에 또 필요한 것 같다.
민주와 평화의 이름으로 김대중 패당이 자행해온 대한민국 해코지는 박정희와 같은 결단의 정치인을 고대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이명박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국민건강권이니 검역主權이니 하면서, 광우난동 사태를 일으켜 사회질서를 교란시킨 김대중 패당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강간한 악질적 민주주의 파괴세력으로 지목된다. 대한민국을 反민주적 김정일 독재집단에 굴종시키려는 좌익민주팔이들은 자유대한민국의 역적들이다. 민주화의 탈을 쓰고 법치와 공권력 약화를 선동해온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팔이들은 한국 민주화의 主敵이다. 지금도 從北좌익세력의 반역질을 제압하고 치안과 국방을 강화할 혁명가가 나타나면, 그는 구국적 민주투사로 불릴 것이다. 비록 조선종 특유의 실리성에 대한 혐오와 망상성에 대한 숭배 때문에, 불행한 영웅으로 불릴지도 모르겠지만...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