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권 400조 투자에도 부지·일정 미확정전력·용수·인허가 따라 실행 변수 커져정정공시서 "기대효과 실현 안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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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정치권이 광주·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국가 프로젝트로 띄우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정정 증권신고서에서 서남권 투자 실행에 여러 단서를 달았다. SK하이닉스는 서남권에 약400조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면서도 부지와 일정, 구체적인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호남 반도체 투자가 지역 균형발전의 상징처럼 부각되고 있지만, 기업 공시에는 실제 착공까지 넘어야 할 조건이 촘촘히 담겼다. SK하이닉스는 중장기 투자 전략의 기대효과에 대해 “장래 시장 상황에 따라 실현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투자 철회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광주·서남권 투자가 확정된 실행계획이라기보다 시장 수요와 인프라 협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을 드러낸 대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0일 제출한 정정 증권신고서에서 총1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전략을 투자위험 항목에 새로 반영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600조원, 청주 생산기지 100조원,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400조원이 골자다. 표면적으로는 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대응하는 생산능력 확충 전략이지만 지역별 확정성에는 차이가 크다.

    ◇서남권 400조, 부지부터 미정 … “규모·일정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유동성이 큰 곳은 서남권이다. SK하이닉스는 서남권 클러스터를 메모리 반도체 생산, 즉 전공정 중심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부지 확보, 팹 건설, 생산설비 도입 등을 포함해 약400조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부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회사는 정정 증권신고서에서 “서남권 지역 가운데 클러스터를 건설할 부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력·용수·교통 등 인프라 여건과 부지 확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거쳐 확정하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구체적인 규모와 일정 역시 수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향후 이사회 결의 등을 거쳐 단계적으로 확정하고, 관련 사항은 구체화되는 대로 다시 공시하겠다는 설명이다. 정치권과 지역사회가 기대하는 ‘광주 반도체 공장’과 달리 기업 공시상 서남권 투자는 부지, 일정, 규모가 모두 조건부인 셈이다.

    청주 투자도 확정된 시간표는 없다. SK하이닉스는 청주 생산기지에 약100조원을 투자해 신규 낸드플래시 팹 건설과 생산장비 도입, HBM(고대역폭메모리) 후공정인 어드밴스드 패키징 역량 강화 등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신규 팹의 구체적인 투자 일정과 계획은 향후 이사회 결의를 거쳐 확정된다.

    용인은 상대적으로 일정이 구체적이다. SK하이닉스는 당초 2045년까지 추진하려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2~4기 팹 건설 일정을 앞당겨 2033년까지 4기 팹 건설을 완료하겠다고 했다. 다만 2033년은 전체 투자 종료 시점이 아니다. 2033년은 4번째 팹의 첫 번째 클린룸이 완공되는 시기다. 이후 나머지 클린룸과 생산설비, 장비 투자는 수요에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되며 600조원 투자는 2033년 이후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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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V 11.9조 투입 … 투자 리스크도 공시에 반영

    이번 정정공시는 미국 나스닥 상장 절차와도 맞물려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등록서(Form F-1)도 수정 제출했다. 신주 최대 1779만주를 미국주식예탁지분(ADS)로 발행하는 구조로 공모 규모는 약294억7000만달러, 원화 기준 약45조4500억원 수준이다.

    자금 사용 계획도 구체화됐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공정 양산 대응을 위해 총11조9497억원 규모의 극자와선(EUV) 스캐너 장비 구매계약을 체결했으며, 2027년 말까지 장비 인도 시점에 맞춰 대금을 분할 지급할 예정이다. 용인 1기 팹,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EUV 장비 취득에는 이번 유상증자 조달 자금이 활용된다. 용인 1기 팹과 청주 P&T7, 미국 인디애나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등에 계획된 자본적 지출은 총55조9196억원이다.

    다만 1100조원 중장기 투자 전략은 이번 ADR(미국주식예탁증서) 발행 자금의 직접 사용 목적과는 분리됐다. 회사는 중장기 투자가 일시에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메모리 수요를 고려해 장기간 단계적으로 이뤄지며, 재원도 집행 시점에 맞춰 조달한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영업현금흐름을 활용하되 향후 여건에 따라 차입이나 증자 등 외부 자금조달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현 시점에서 자금조달 방식과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정정공시에는 반독점 소송 리스크도 추가됐다. 일반 D램 간접구매자들이 지난달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SK하이닉스 등을 상대로 추정적 반독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다. SK하이닉스는 소송이 초기 단계여서 결과와 예상 손실을 산정하기 어렵고, 향후 진행 경과를 적시에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지연 가능성도 명시됐다. 회사는 건설 부지 결정과 확보, 정부·지자체 협의와 인허가, 인프라 구축, 반도체 생산장비 확보가 지연되거나 규제가 강화될 경우 중장기 투자 전략의 실행이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비용 증가와 생산시설 구축 지연, 고객 수요 대응 차질, 신제품 출시 지연, 시장 선점 효과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번 정정공시는 정치권이 띄운 광주·서남권 반도체 투자 구상과 기업의 실제 집행 조건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서남권 400조원 투자 규모가 먼저 부각됐지만, 실제 반도체 공장은 부지와 전력·용수, 인허가, 장비 조달, 고객 수요가 모두 맞아야 움직인다”며 “SK하이닉스가 정정공시에서 일정과 규모 변동 가능성을 명시한 것은 광주·서남권 투자가 확정된 실행계획이 아니라 조건부 장기 프로젝트라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