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용자가 은행의 과실을 밝히지 못하면 보상받기 어려워
  • 금융사기는 더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경찰, 기자들도 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오늘 내가 당할 수도 있는' 사고가 됐다. 금융사기와 의료사고는 비슷한 점이 많다.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사람들, 즉 모든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아무도 모르게 당할 수 있다. 


    지난해 이슈가 돼 최근 수사가 종결된 농협 텔레뱅킹 무단인출 사건을 살펴보면, 사기범을 구속했지만 은행이나 이용자 양측의 과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용자는 보안카드를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놓거나 컴퓨터에 저장해 놓지 않았다. 지인에게 계좌 비밀번호나 금융정보를 알려준 적도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대신 계좌이체나 인출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즉, 이용자의 '사소한' 과실도 없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범들은 개인 금융정보를 빼내 1억2000만원을 무단으로 인출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의 노인들이 금융사기를 당하는 시대가 아닌, 금융보안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는사람들도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


    또한 금융사기와 의료사고 모두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이용자가 거대한 상대방의 과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피해를 당한 후 상대방의 형사적 위법행위가 있으면 형사 입건할 수 있지만, 은행의 위법행위가 아닌 사기범의 위법행위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용자는 은행을 상대로 소송하려면 민사로 갈 수 밖에 없다.


    민사의 성격상 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상대의 과실을 밝혀내야 하는 구조다. 은행은 금융사기가 발생해도이용자가 은행의 중대한 과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큰 피해가 없다. 또한 금융사기 보상보험에 가입을 했어도 적극적으로 이용자의 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동일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은행과 이용자의 불평등 구조는 '피해자'를 은행이 아닌 이용자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사기가 발생하는 순간 이용자는 은행의 '고객'이라는 명칭에서 '피해자'로 바뀐다. 사기범은 은행의 금고에서 돈을 편취했지만,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은행은 피해를 고객엑 떠넘기는 셈이다.


    은행은 이용자 A씨가 인터넷 혹은 전화로 접속해 A씨라고 생각하고 돈을 내줬다. 사실 그는 사기범B씨다. 그렇다면 B씨에게 돈을 내준 책임은 은행에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사기범이 은행 금고의 돈 중 A씨 이름이 적혀 있는 돈을 가져 간 것도 아닌데, 왜 피해를 A씨가 입었다고 하는 것인지, 금융당국은 왜 은행 논리가 맞다고 옹호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금융감독원이 '금융 5대악' 중 금융사기를 첫째로 꼽은 만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