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2001년 해양수산관·연락관으로 의기투합… 이내비게이션 도입 등 협업 기대
  • ▲ 임기택 IMO 사무총장(왼쪽)과 김영석 해수부 장관.ⓒ연합뉴스
    ▲ 임기택 IMO 사무총장(왼쪽)과 김영석 해수부 장관.ⓒ연합뉴스

    3년여 영국에서 타향살이하며 동고동락했던 두 중년남성이 있다. 두 남자는 바다를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14년이 흐른 2015년 한 남자는 제19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됐다. 다른 한 명은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의 제9대 사무총장 취임식을 앞두고 있다.

    지난 11일 취임한 김영석 해수부 장관과 오는 26일 취임식을 앞둔 임기택 IMO 사무총장의 얘기다.

    앞으로 해수부가 IMO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국제해사기준 제정 등을 선도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두 국내·외 리더의 인연은 더없이 좋은 긍정의 신호로 해석된다.

    김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 사무총장과의 인연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 장관은 "15일 임 사무총장과 저녁을 같이 했다"면서 "그 자리에서 임 사무총장이 '3년간 같이 있던 사람 중 한 명은 국내에서 장관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국제기구 수장이 됐다'고 말을 꺼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1998~2001년 대사관에 있을 때 (임 사무총장과) 영국에 같이 있었다"면서 "IMO 사무총장은 100년이 지나도 두 번 나오기 힘든 자리이니 국제해사분야에서 훌륭한 일을 한 존경받는 총장으로 남을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번에 영국 대사관에 IMO 대표부를 만들고 내부에는 IMO 한국위원회도 만들어서 IMO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일본을 뛰어넘는 대응체계를 갖추고 (국제해사분야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보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과 임 사무총장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장관이 당시 해운항만청 선원선박국에서 사무관으로 일할 때였다. 열의에 불타 밤늦게까지 혼자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 한 번은 여름에 야근을 하는데 너무 더워 러닝셔츠만 걸치고 앉아 일을 했다. 사무실에 혼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선박국 사무실을 둘러보게 됐는데 다른 사무실 방에 자기처럼 러닝셔츠만 입고 혼자서 일하는 젊은 사무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임 사무총장이었다.

    두 사람은 비록 러닝셔츠 차림으로 첫인사를 나누었지만, 업무에 임하는 열의에 있어 서로 만만치 않은 친구라는 인상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영국에서 다시 조우했다. 김 장관은 1998년 8월부터 2001년 8월까지 주영 한국대사관에서 1등서기관(해양수산관)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그 무렵 임 사무총장도 영국 주재 IMO 연락관으로 파견을 나왔다.

    해수부 관계자는 "두 분 다 젊고 키도 큰 편인 데다 일 욕심이 많고 무엇보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열혈한이어서 당시 런던에 주재했던 각 나라 IMO 대표단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IMO는 회의가 많기로 유명한 국제기구 중 하나다. 국제회의에서는 회의에 자주 참석해 관련된 내용을 많이 알고 발언도 적극적으로 해야 존재감을 인정받는다. 김 장관과 임 사무총장은 의기투합이 잘 돼서 IMO 회의가 있을 때마다 둘이 IMO 내부의 주요 보직자는 물론 각 나라의 대표단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왕성하게 움직였다. 현 IMO 사무총장인 세키미즈 코지 씨와도 그 시절부터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서로 업무적인 궁합이 잘 맞았던 데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각 나라 IMO 대표단들이 매료되면서 회의에서 다른 나라 대표단을 설득하거나 우리나라 입장을 관철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김 장관은 "그즈음 IMO에서 우리나라의 인지도나 위상은 순위를 매기면 20위권이었지만, 임 사무총장과 의기투합해 부지런히 활동한 결과 나중에는 10위권 이내로 끌어올렸다"고 자부했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당시 가족들도 같이 영국에 머물러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대표단이 IMO 회의 참석차 런던에 오면 번갈아 자택에 초대해서 대책회의도 하고 음식 대접도 하면서 어울려 지냈다는 설명이다.

    김 장관은 지난 6월 IMO 사무총장 선거활동이 한창일 때는 차관 신분으로 당시 부산항만공사 사장이었던 임 후보의 당선을 지원했다. 루벤 아로세메나 주한 파나마 대사가 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6월24일 오후 9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을 때 김 차관도 유대종 외교부 국제기구 국장, 한국선급 박범식 회장 등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파나마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 세계 상선의 20%(9000여척)가 등록돼 있어 세계 최대 해운국으로 꼽힌다. 당시 파나마가 임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나섬에 따라 중남미 등 다른 이사국의 지지를 얻는 데도 힘이 실렸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IMO는 바다의 안전, 환경 등과 관련된 정책을 총괄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로, 해운·조선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의 연구결과 1981년부터 2013년까지 IMO 국제규범이 우리나라 연관산업에 미친 경제적 영향은 153조원쯤으로 추산된다. 내년부터는 모든 회원국이 IMO 안전·환경 관련 국제규범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IMO로부터 감사를 받아야만 해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해수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한국형 이내비게이션(e-Navigation) 사업과 관련해 IMO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내비게이션은 첨단 장비와 무선통신망을 활용해 선박 운항자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차세대 전자항법체제다.

    IMO는 인적 과실에 의한 해양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9년부터 이내비게이션을 도입할 예정이다.

    해수부는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선박구조·설비, 관제, 통신 등 선박운항 관련 전 분야에서 새로운 안전기준이 만들어지게 돼 사고 감소와 함께 해운·조선 시장에서 앞으로 10년간 300조원의 신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 장관도 취임사에서 "이내비게이션 의무화 등 강화된 국제규제 동향에 맞추어 새로운 국제해사기준 제정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김 장관과 임 사무총장이 어떤 콤비플레이를 선보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