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울며 겨자 먹기로 후원 규모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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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와 기획재정부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기업 후원금 모금에 빨간불이 켜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공기관 후원을 추진하는 가운데 몇몇 공기업을 염두에 둔 '삥 뜯기'라는 의견도 나온다.
공기업 처지에선 예산이나 경영실적 평가에서 기재부 눈치를 살펴야 하므로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26일 기재부에 따르면 27일 열리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공기관의 평창동계올림픽 후원 활성화 방안을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내년에 한해 공기업이 평창올림픽 후원 지출로 말미암아 정부의 경영실적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관련 지침을 수정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는 경영관리개량 지표라는 게 있다. 이 가운데 노동생산성지표의 경우 해당 기관의 순이익이 평가의 출발선이 된다. 후원금으로 비용 지출이 커지면 수익성이 안 좋아지므로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
기재부 설명으로는 공공기관의 후원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 평창올림픽에 후원한 기관은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조직위는 애초 공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경영실적 평가 때 후원 기관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건 없다"면서도 "가점은 제외하고,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선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조직위가 일부 공기업에 현금 후원을 사실상 강요한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조직위가 위축된 기업들의 후원금을 대체할 요량으로 현물보다 현금 후원을 선호하는 가운데 대상 공기업이 한정돼 있어서다.
전체 공공기관 323곳 중 경영실적 평가를 받는 대상은 준정부기관 포함 119곳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 중 조직위가 후원을 기대하는 기관은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 8곳과 강원랜드 등 기타 공공기관 2곳을 포함해 총 10곳이다.
대부분 공공기관은 기재부가 관련 지침을 고쳐 후원을 독려하는 데 안 하고 버티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A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요청하면 의무는 아니더라도 부담이 될 것"이라며 "공기관으로선 적자가 나도 해야 하는 부분이므로 재무상황을 파악해 해줄 수밖에 없다. 일부 기관은 조직위가 공기업을 상대로 돈을 뜯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기관 관계자는 "(경영평가에서) 피해가 없고 가능하다면 (기재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다만 예산 용도가 정해져 있어 후원할 수 있는 규모는 제한되는데 솔직히 1억원만 해도 부담스럽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기재부는 기관의 홍보비나 기부금을 통해 후원금을 내되, 금액에는 제한을 두지 않을 방침이다. 조직위에서는 대기업군이 주로 참여해 수백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공식파트너 후원을 요구한 공공기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기관 관계자는 "공기업은 말이 자율경영이지 정부의 통제가 강한 상황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며 "대부분 공기업은 예산편성권을 쥔 기재부 방침에 가타부타할 상황이 아니므로 후원금 규모를 고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기재부도 이와 관련해 고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직위의 후원기관 가점 요청을 거부한 것도 정부가 공기업의 등을 떠민다는 지적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한편 조직위는 경기장 건설과 운영비 등에 필요한 자금을 총 2조8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이 중 2조4000억원은 방송권과 입장권, 기념주화 판매수익, 기업 스폰서 등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나머지 4000억원에 대해선 아직 자금 확보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금 계획이 세워진 9600억원 규모의 공식 후원금 모금도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기업들의 후원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후원 협약식이 예정됐던 기업 중 몇 군데는 연기 요청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위는 올해 후원금 총 목표액의 90%인 8640억원 모금을 낙관했으나 현재까지 86.5% 달성에 그쳤다. 금액으로 따지면 336억원쯤이 펑크 난 셈이다. 내년에 모금해야 하는 공식 후원금은 960억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