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규제·김영란법 여파… 권리금 포기 속출전문가 "자영업 업황부진 부실위험 전이될 수도"
  • 서울 을지로 지하상가. ⓒ연합뉴스
    ▲ 서울 을지로 지하상가. ⓒ연합뉴스


    대출규제로 부동산시장 전반이 움츠러든 가운데 시장안팎의 악재로 경기불황까지 겹치면서 상가 부동산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서울 도심 주요상권에서는 매출감소와 공실증가로 시장이 침체된 데 이어 권리금이 없는 임대매물까지 등장하면서 최악의 한파가 몰아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17일 점포라인에 따르면 지난달 임차·매매시장에 나온 점포는 모두 1238곳으로, 2010년(1309곳) 이후 12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인 2007년 12월 1480곳이던 서울 상가매물은 2008년 12월 2544곳으로 급증한 뒤 점차 수그러들었다. 경기 회복세를 보이던 2011년 이후에는 1000곳 미만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염정오 점포라인 팀장은 "자영업 시장은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하고, 정책 이슈에 따른 심리 위축이 곧바로 드러나는 특성이 있다"며 "2012년부터 시작된 베이부머들의 은퇴 후 창업 열풍이 2015년 들어 잦아들면서 반짝 살아났던 자영업 경기가 지난해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김영란법)'으로 결정타를 맞고 매물 수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매물아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주요상권은 '공실난'과 '거래절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연말부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새로 가게를 내려는 사람들이 관망세로 돌아서자 이달 들어서는 권리금마저 포기한 매물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 홍대·합정 상권의 중대형 상가(건축 연면적의 50% 이상을 임대 중인 지상 3층 이상 상업시설) 공실률은 지난해 3분기 12.7%로, 직전 분기 5.9% 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마포구 A공인중개소 대표는 "3분기까지만 하더라도 권리금이 최소 2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을 형성했다. 골목길, 지하, 2층 등 위치가 안 좋은 가게마저도 5000만원 이상의 권리금에도 매물이 부족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권리금이 1000만~2000만원가량 낮아졌고, 무권리 매물도 상당수라서 전용 40㎡ 규모의 1층 점포가 권리금 없이 보증금 3000만원·월세 200만원에 나오는 식"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주요 상권도 마찬가지다. 강남구 신사역 인근 세로수길에서는 권리금이 3억원을 웃돌았던 전용 160㎡ 1층 가게가 권리금 없이 임대매물(보증금 1억원·월 780만원)로 나왔다. 압구정 먹자골목에 들어선 전용 60㎡ 1층 점포는 보증금 7000만원에 월 340만원으로 역시 권리금이 없다. 선릉역 일대 포스코사거리에서도 1층 전용 80㎡ 가게가 보증금 1억원·월 600만원·무권리 매물로 나왔다.

    강남구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비싼 임대료를 생각해 본전이라도 건지겠다고 버티던 가게 주인들이 적자에 허덕이다가 김영란법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등으로 중국인 관광객까지 줄어들면서 권리금마저 포기하고 나가면서 공실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규분양 상가도 다를 바 없다. 서울 강북의 한 스트리트형 상가는 분양 후 1층 면적 33㎡ 점포 월 임대료를 350만~450만원으로 책정하고 임차인을 찾고 있지만, 40% 가까이 비어있다. "입지가 좋아 조정이 어렵다"고 버티던 주인들도 50만~100만원까지 조정이 가능하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입점 문의 자체가 뜸하다.

    올해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청약시장 위축으로 수익형 부동산으로 시중자금이 몰리면서 상가 고가분양이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수익형 부동산에 또 다시 자금이 몰리면 분양가가 높아지는 현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다만 수익형 부동산 수익률 자체는 지금도 높은 수준인 만큼 예단하기 어려운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소비심리 급락, 부동산 경기 위축, 시중금리 상승 등으로 영세 자영업 및 경기 민감 업종을 중심으로 대출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한국은행 가계부채 DB를 보면 금융권의 개인사업자대출로 집계된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3분기 말 기준 300조원이지만, 자영업자의 가계대출까지 포함할 경우 그 규모는 464조원(차주수 141만명)으로 1.5배 이상이다. 특히 이 중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전체의 84.0%인 390조원(차주수 113만명)에 달한다.

    허문종 우리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자영업 매출 감소가 우려되는 가운데 탄핵정국에 따른 소비심리 악화로 자영업 비중이 높은 매출 부진이 심화될 전망"이라며 "부동산·임대업의 자영업 비중이 빠르게 확대됐으나, 부동산시장이 약세로 전환되고 있어 자영업 업황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특히 자영업자 대출은 사업자·가계의 중복 대출, 은행·비은행의 다중채무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연체가 발생할 경우 부실이 전이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며 "자영업자 대출에 관해서는 향후 내수경기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물론, 대출 건별이 아닌 차주별 종합적인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