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기간·인력 부족… 참여정부 때 '얼렁뚱당' 조사 재연될 수도
  • ▲ 남북고위급회담.ⓒ연합뉴스
    ▲ 남북고위급회담.ⓒ연합뉴스
    남북이 15일 고위급회담을 열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다음 달 말에서 12월 초 사이 진행하기로 한 가운데 북한 현지 공동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 기간이 짧은 데다 조사인력도 충분치 않아 보여주기식 졸속 조사가 될 가능성이 적잖다는 것이다.

    남북은 이날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고 수석·실무대표 접촉을 진행했다.

    양측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연내 착공식을 하기로 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현지 공동조사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애초 남북은 지난 8월 말 남측에서 열차를 끌고 올라가 경의선 철도 북측구간을 조사하려 했으나 유엔군사령부가 군사분계선 통행계획을 승인하지 않아 불발됐다.

    철도의 경우 경의선 현대화를 위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경의선은 물리적인 철길은 연결돼 있지만, 정상적인 철도 운행은 어려운 실정이다.

    국토부는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조사 시점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길 기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벌써 10월 중순이라 날씨가 더 추워지면 해도 빨리 지는 등 현지조사에 애로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날 회담은 예상보다 진척된 결과물을 내놓았다. 남북은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다음 달 말에서 12월 초 사이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경의선 철도 현지 공동조사는 이달 하순, 동해선 철도 현지 공동조사는 다음 달 초부터 착수하기로 했다.
  • ▲ 북쪽으로 이어진 경의선 철도.ⓒ연합뉴스
    ▲ 북쪽으로 이어진 경의선 철도.ⓒ연합뉴스
    문제는 현지조사가 이뤄져도 졸속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앞서 북측은 조사 기간으로 일주일쯤을 제시했다. 반면 철도전문가들은 적어도 3개월은 걸려야 제대로 된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견해다.

    국토부는 이번에도 북측에서 조사 기간으로 일주일쯤을 제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토부 관계자는 "(북측이 제시할) 조사 기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로 본다"고 했다. 이어 "일단 이번 조사는 세부조사가 아닌 개략 조사가 될 것"이라면서 "(3개월 의견은) 조사인력을 여러 팀으로 나눠 진행할 수도 있으므로 절대적인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남북은 이날 공동보도문에서 조사 기간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다만 조사 진행에 따라 일정을 연장하거나 필요하면 추가 조사 일정을 협의하기로 했다.

    착공식 시기를 고려하면 경의선 조사에 쓸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았다. 한 달간 조사할 수 있다면 애초 국토부 예상보다는 많이 늘어나지만, 여전히 철도전문가들이 보는 적정 조사 기간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짧은 조사 기간을 보완하려면 조사인력을 충분히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철도건설과를 주축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기술전문가로 현지조사단을 꾸릴 생각이다. 국토부는 조사단 규모나 명단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철도업계 설명을 참고하면 지난 8월 철도공단이 추천한 기술전문가는 2명이었다. 코레일에서 열차 운행 가능 속도, 기관차·객화차 성능 등을 파악하고, 철도공단에서 터널과 교량 등 핵심 철도시설을 살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사 투입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민간전문가 투입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북측에서 조사단 규모를 제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전문가는 필요하다면 참여할 수도 있으나 반드시 참여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철도공단과 코레일 전문가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도전문가는 개략 조사에 회의적인 시각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참여정부 시절 이뤄진 경의선 현지 조사의 경우 북측에서 이동하다 잠시 멈춰 현장을 잠깐 보여주고는 다시 태워 이동하는 식으로 진행됐다"며 "이번에도 그렇게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국토부도 북측에서 과거의 조사방법을 따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국토부는 조사 기간이 비록 짧더라도 개략 조사 결과만으로 경의선 현대화 수준을 결정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견해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사자료가 없어) 아직 경의선 현대화 수준은 결정된 게 없다"며 "조사 기간이 짧을 수도 있으나 전문가들이고 북측에서도 개략적인 지형도 등 관련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철도전문가는 "(국토부 설명은) 말은 되지만, 맞는 말은 아니다"며 "현대화 수준을 결정하려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앞서 나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북 경제협력 준비단계에서 과속 움직임을 보이고 전시성 행사에 주력한다는 의견이다.
  • ▲ 금강산 삼일포지구 남북 소나무 병해충 공동점검.ⓒ연합뉴스
    ▲ 금강산 삼일포지구 남북 소나무 병해충 공동점검.ⓒ연합뉴스
    한편 남북은 이날 장성급 군사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열어 비무장지대 등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기 위한 문제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소나무 재선충 방제와 양묘장 현대화 등을 위한 산림협력 분과회담과 전염성 질병 유입·확산방지를 위한 보건의료 분과회담은 각각 오는 22일과 이달 하순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2020 하계올림픽 등 국제경기대회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하고, 이달 말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북체육회담을 열어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남북적십자회담은 다음 달 중 금강산에서 진행해 이산가족 면회소시설 개보수 공사 착수에 필요한 문제를 협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북측 예술단의 남측 공연과 관련한 실무 협의도 이른 시일 안에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회담에 남측에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정렬 국토부 2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이 참석했다. 북측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윤혁 철도성 부상,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원길우 체육성 부상,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대표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