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매출 5조 하회, 영업익 33% 감소전문 석화그룹 도약 위해 '전자소재' 부문 매각천연고무, 코로나19 등 위기를 기회로… 실적 개선 기대감
  • ▲ 금호석유화학 여수 고무2공장(야경). ⓒ금호석유화학
    ▲ 금호석유화학 여수 고무2공장(야경). ⓒ금호석유화학

    3년간 이어오던 금호석유화학의 호황기가 끝났다. 전반적인 석유화학 업황 부진에도 견조한 흐름을 이어왔으나, 주력인 합성고무의 재정비와 '효자 페놀' 부문의 부진으로 전년대비 실적이 하락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선택은 전문 석유화학그룹으로의 도약이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추진하던 전자소재 부문을 매각하고 앞서 증설한 NB라텍스의 생산설비 가동률을 끌어올려 반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24일 잠정실적 보고서 분석 결과 지난해 금호석유화학은 연결 기준 매출액 4조9779억원, 영업이익 3679억원의 영업성적을 기록했다. 매출의 경우 전년 5조5849억원에 비해 10.8% 감소했으며 영업이익(5546억원)은 33.6% 줄어들었다.

    두 지표의 동반 하락으로 영업이익률도 9.93%에서 7.39%로 저하됐으며 순이익도 5030억원에서 2940억원으로 41.5% 낮아졌다.

    2015년 바닥을 다지고 반등한 매출의 경우 최근 2년간 5조원 이상을 올렸으나, 그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영업이익, 이익률, 순이익 등 수익성 지표들도 2016년 이후 이어지던 상승세가 멈췄다. 2018년 4분기부터 전년대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다. 지난해 2분기부터는 전분기대비 실적마저 악화되면서 실적 부진을 가속화시켰다.

    특히 4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다. 매출 1조1857억원, 영업이익 161억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대비 매출(1조3526억원)은 12.3% 줄고, 영업이익(8433억원)은 80.8% 급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4분기 합성고무 부문의 생산설비를 대규모 정비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3분기 높은 원가로 생산한 제품을 4분기에 판매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합성수지 부문의 경우 4분기 들어 원재료로 쓰이는 스티렌모너머(SM)와 부타디엔(BD)의 가격이 떨어진데다 연말 제품수요 부진이 겹치면서 전체 제품가격이 하락해 실적이 후퇴했다.

    연결 자회사 금호피앤비화학의 페놀유도체 판매도 부진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시작된 뒤로 글로벌 제조업이 둔화되면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쓰이는 폴리카보네이트(PC) 수요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이에 원재료인 패놀유도체 수요도 함께 부진하면서 가격이 급락, 공장 일부를 가동중단하면서 가동률이 70% 안팎에 그친 탓이다.

    중국발 악재도 발목을 잡았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페놀유도체 주력 비스페놀A(BPA) 해외 수입 분에 반덤핑 광세를 부과했다.

    게다가 현지 기업들이 설비 증설에 들어가 과잉공급 우려로 가격경쟁력이 더 약화된 상황이다.

    유안타증권은 글로벌 페놀유도체 증설 규모가 지난해 52만t으로, 수요 증가분 20만~30만t을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올 하반기 페놀 62만t, BPA 35만t 등 신규 가동이 예정돼 있는 만큼 금호피앤비화학의 부진 탈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올해 영업이익이 2947억원, 내년은 3532억원으로 지난해 실적에 비해 저조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A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시작된 중국의 반덤핑 공세에 연초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하반기 12만t 규모의 신규 설비 가동 등 영향이 이어진다"며 "섣부른 이익 회복 기대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 ▲ 금호피앤비화학 야경. ⓒ금호석유화학
    ▲ 금호피앤비화학 야경. ⓒ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의 선택은 글로벌 석유화학 전문그룹으로의 도약과 육성이다. 이를 위해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설립된 전자소재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합성고무 및 합성수지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최근 금호석유화학은 포토레지스트(PR)를 생산하는 전자소재사업 부문을 SK머티리얼즈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PR은 반도체의 필수 핵심소재로, 금호석유화학은 2005년 사업다각화를 위해 전자소재 부문을 설립하고 일본·미국 등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점한 국가들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감행해왔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2005년 국내 최초로 불화아르곤(Arf)과 PR을 양산했으며 현재까지 국내외 굴지의 반도체 회사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아 투자 및 협력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금호석유화학은 PR 연구 및 생산 관련 인력 및 시설·장비를 SK머티리얼즈로 이전하게 된다. 인수금액은 약 400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8월 증설을 마친 NB라텍스 생산설비의 가동률을 높이는데 매진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상세한 수치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설비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당초 계획을 세운대로 완전가동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금호석유화학은 NB라텍스의 증설을 통해 기존 40만t에서 55만t으로 늘려 수요 증가에 대응할 토대를 마련해뒀다. 증권가에서는 금호석유화학이 현재 NB라텍스 생산설비의 가동률을 80%까지 끌어올렸고, 상반기 내 100%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NB라텍스는 의료용 고무장갑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합성라텍스 제품이다. △내구성 △내마모성 △인장강도 △색상발현성이 우수하면서도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없어 천연고무를 대체하면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2007년 총 1232억원 규모의 연구개발에 착수해 2년 만인 2009년 NB라텍스 생산기술을 독자개발하고 상업생산에 성공했다. 이후 2011년 기준 세계 시장의 24%를 점유하며 현재까지 해당 분야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점유율 29%를 차지하면서 글로벌 1위 자리를 수성했다. 2위인 말레이시아 신토머(Synthomer)는 18%의 점유율을, 대만 난텍스(Nantex)와 방콕 신테틱스(Synthetics)는 각각 9%, 8% 점유율로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생산량도 지난해 증설로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 신토머의 생산능력은 28만t이다.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5% 이상, 5위 이내 제품 가운데 세계 시장규모 5000만달러 또는 수출 500만달러 이상인 제품에만 해당되는 세계일류상품에도 최근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 시장 확대 등 해당 분야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다 지난해 말 천연고무 주요 생산지인 동남아시아에서 고무나무 열병으로 경작면적의 절반이 피해를 입으면서 대체재인 합성고무, 특히 NB라텍스의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올해 동남아의 천연고무 수출량이 70~90% 줄어드는 대신 합성고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수요가 급증하는 호재를 맞고 있다. 실제 뉴스트레이트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톱글러브 등 말레이시아의 고무장갑 제조사들이 받은 의료용 장갑 주문은 평년의 두 배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본연인 석유화학에 집중하면서 NB라텍스의 증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 그동안 '효자'였던 페놀유도체의 부진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