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논의가 사치"… 노동계 내부 교통정리도 안 돼노사 요구안은 29일 윤곽 예상… 법정기한 또 넘길 듯역대 최저인상률 깰까… 외환위기 당시 2.7%대 전망
  • ▲ 최저임금위.ⓒ연합뉴스
    ▲ 최저임금위.ⓒ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또 법정기한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노사 양측은 법정 심의기한인 오는 29일에야 최초 요구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가 엄중한 가운데 노사는 물론 노동계에서도 인상 요구안과 관련해 교통정리가 안되는 모습이어서 올해도 심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불확실성' 측면에서 과거 경제위기와 견줄 바가 아니라는 의견이 적잖아 노사간 힘겨루기 끝에 역대 최저수준인 2.7%대에서 인상폭이 결정될 거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제2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착수한다. 이번 회의에는 지난 11일 첫 회의에 불참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단위로 할지, 월급 환산액을 함께 적을지, 지역별·규모별로 차등지급할지 등을 두고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다만 이날 노사가 최초 요구안을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노총이 단독으로 내년 인상 요구안을 발표했지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노동계 공동 요구안을 마련하겠다는 태도여서 눈치싸움을 벌이다 법정기한인 오는 29일 최초 요구안을 내놓을 거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29일 요구안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도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이 처음 참석하는 회의에서 패를 공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 사용자위원은 "각 소속단체의 입장은 정리가 됐겠지만 이제 2번째 만남이니 얘길 나눠보고 (요구안 제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가 29일 최초 요구안을 내놓더라도 이날 수정 요구안을 거쳐 최종 심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경영계와 노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올해도 법정 처리기한을 넘길 공산이 큰 셈이다.

  • ▲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기자간담회.ⓒ연합뉴스
    ▲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기자간담회.ⓒ연합뉴스

    노사 모두 코로나19 사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어 올해 심의도 녹록지 않을 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선 경영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의 지급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의견이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서 다시 최저임금이 오르면 종업원을 해고하거나 아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오세희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은 "(현 시국은) 최저임금 인상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며 "폐업하는 (회원이) 많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또 올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역설했다.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금은 상황이 안좋다. 지급 능력이 안돼 고용 유지가 어려운 처지에서 임금 인상 논의는 무의미하다. 내년은 동결이 절실하다"면서 "노동계는 어려운 상황이 저임금근로자의 해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가장 우려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모순"이라며 "과거 세계 금융위기 시절에도 동결은 없었다는 (노동계) 주장은 당시의 저임금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상공인은 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으며 생존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제출한 35조원 규모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촉구했다. 자체 실태조사 결과 72%의 소상공인이 코로나19 사태가 6개월 이상 장기화하면 폐업하거나 폐업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노동계는 내부 교통정리가 안돼 어수선한 모습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요구안을 올해(8590원)보다 25.4% 오른 1만770원으로 정했다. 내년도 노동자 가구의 실제생계비가 225만7702원으로 추산된다며 이를 참작하면 최저임금이 월 환산액으로 225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영세자영업자 반발을 의식한 듯 정부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지급 수준도 높일 것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산정기준)와 관련해선 오는 2024년부터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액을 최저임금에 포함하게 한 최저임금법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태도다. 산입범위 확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이 그동안 노동계가 공동 요구안을 내놓던 관행을 깨고 단독으로 요구안을 제시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24일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민주노총의 단독 요구안 제시와 관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와 심도있게 논의해 노동계 공동 요구안을 마련하겠다"면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 인상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제시안이 지급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요구안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은 2018년 16.4%, 지난해 10.9% 급격히 올랐다가 올해 2.9% 상승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섰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요구한 25.4%는 2018년과 지난해 인상률은 합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 ▲ 최저임금 결정.ⓒ연합뉴스
    ▲ 최저임금 결정.ⓒ연합뉴스

    올해도 최저임금 심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일각에선 내년 최저임금이 동결보다 최소한의 폭으로 인상될 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코로나19 사태가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때와 비교되는 가운데 당시도 최저임금이 '동결'된 사례는 없어서다. 최저임금위 심의편람을 보면 외환위기 때인 1988년과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심의에서 최저임금은 2.7%와 2.75% 각각 올랐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기승을 부렸던 2015년에도 8.1% 인상이 결정됐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전염병이라 해도 코로나19는 메르스와 전파력이나 파급력이 비교가 안 된다"면서 "특히 사태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IMF나 금융위기 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동결보다는 역대 최저 수준인 2.7%대에서 인상 폭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인상률 2.87%는 2010년에 적용한 최저임금 인상률(2.8%) 이래 10년 만에 가장 낮고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1988년 이래 3번째로 낮은 인상률이었다.

    정부도 최저임금이 또다시 급격히 오르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래경제문화포럼 조찬모임에 참석해 "사회안전망 확대와 저소득층 소득보강 등 속도를 낼 부분은 더 내지만,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제처럼 기업에 부담이 너무 가파른 부분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최저임금이 지난 2~3년 너무 급격하게 오르면서 (정부정책인 포용성장이) 역풍을 맞았다"고 덧붙였다.

    홍 부총리 발언은 최저임금위가 첫 전원회의를 열고 심의에 본격 착수한 이후 나온 것이어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7월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기대보다 빠르게 증가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정부가 최저임금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도 몇 번 밝혔다"면서 "최저임금이 시장 수용성 있게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는 이틀 뒤인 12일 오전 5시30분쯤 표결 끝에 올해 최저임금을 2.87% 올리기로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