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이번 정기국회 처리 입장… 저지할 야당이 뒤통수 친 격재계 "독소조항 빼야"… 경총·상의 회장, 국회 찾아 읍소 예정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기업 옥죄기만… 경쟁력 갈아먹어
  • ▲ 기업 발목 잡는 규제.ⓒ연합뉴스
    ▲ 기업 발목 잡는 규제.ⓒ연합뉴스
    "내 편이 없다."

    야당인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경영계가 뒤숭숭하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로 경제가 비상인 가운데 기업활동을 더욱 위축하는 법안을 앞장서 저지해야 할 보수정당에서 먼저 처리하자고 뒤통수를 친 격이어서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언론과의 통화에서 "과거에 우리도 하려고 했던 것이므로 일단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시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만 해도 자신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만들 때 내세웠던 것이라는 견해다.

    김 위원장이 정부가 낸 법안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거대 여당이 법 개정을 벼르는 상황에서 제1야당이 물꼬를 터준 셈이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일각에선 거여(巨與)를 의식해 모종의 포석을 깐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경영계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 됐다.

    당장 당 소속 의원 사이에서도 공정경제 3법에 담긴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임 방안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독소조항과 관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해당 법안들은 조문 하나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 있다"며 "공청회 등을 열어 독소조항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정치인의 발언을 두고 맞다 틀리다 말하기가 부담스럽다"면서도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와 국정감사 등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지금은 이들 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시점이 아니다. 어떤 정치적 이벤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점에 (이런 발언이) 갑작스럽게 나왔는지 궁금하다"고 의아해했다. 다만이 관계자는 "(김 위원장 발언이) 원론적인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나중 발언에선 고칠 것도 있다고 했으니 일단 두고 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중견기업연합회 한 관계자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점에 야당에서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경제가 위중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내수만으로 살 수 없다. 수출을 하려면 세계 선진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규제를 풀기보다는 계속 기업을 옥죄는 법안만 처리하겠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이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식시장 상장을 꺼리거나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는 중견기업이 많을 거다. 외국기업의 국내 투자유치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이미 적잖은 국내기업이 해외로 사업장을 옮긴 가운데 (정부가) 국내로 복귀기업(U턴기업)이 많아지도록 여건을 조성하지는 못할망정 되레 악화하고 있다.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을 촉진한다는 정부 정책을 스스로 반감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정은 공정경제 3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해당 법안이 여과 없이 통과되면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활동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며 저지 활동에 나선다는 태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코스닥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지난 16일 공동성명을 내고 "(공정경제 3법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고 도입 시 우리 기업의 세계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라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일 자금이 불필요한 지분 매입에 소진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제단체장들은 국회로 달려가기로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오는 22일 국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도 22·23일 국회를 찾아 야당 지도부를 만난다. 이들은 해당 법안들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하고 법안 통과 저지를 읍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 ▲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연합뉴스
    ▲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연합뉴스
    ◇주주 권리 침해·경영권 훼손 우려 등 부작용 큰데

    경영계는 상법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에 대해 반대한다. 현행 상법은 감사위원을 선임된 이사 중에서 뽑도록 한다. 개정안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이유로 1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따로 선출하도록 규정한다. 또한 최대 주주 의결권을 특수관계인과 합쳐 3%를 넘지 않게 제한한다. 경영계는 이런 규정이 대주주의 권한을 침해하고 투기자본의 딴지걸기 등 경영권 위협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계 관계자는 "2~3대 주주나 해외투기자본이 이사회에 진출해 회사를 압박하고 부당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변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중대표소송제도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이 제도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나 손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게 한다. 정부와 여당은 계열사 간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고 비리를 끊는다는 취지로 도입을 추진한다. 개정안은 비상장회사 주식 지분의 100분의 1 또는 상장회사 지분 1만분의 1만 가져도 해당 회사가 50% 이상 출자한 자회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모회사의 적은 지분을 획득해 자회사 등의 경영에 간섭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재계에선 우리나라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외국에 비해 적은 상황에서 외국계 투기자본이 자회사 경영을 훼방 놓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만든 뒤 '먹튀'할 수 있다는 견해다. 다중대표소송제를 입법화해 의무화한 나라는 일본 정도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경영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송 대상을 100% 자회사로 한정한다. 미국도 판례를 통해 인정 사례를 찾아볼 순 있으나 모회사가 100% 자회사 지분을 소유한 경우로 제한하는 분위기다.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논란거리다. 이 법안은 경영계와 야당의 반대로 지난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지만, 정부와 여당이 재추진하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가 갖는 고발권을 누구나 고발할 수 있게 허용한다. 대기업의 반경쟁적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허위 고발 남발이나 공정위·검찰의 이중 조사 등으로 대표적인 기업 옥죄기 법안으로 불린다.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를 막겠다며 규제 기준을 현행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회사·20% 이상 비상장회사에서 20%로 일원화한 것도 기업 경쟁력을 갈아먹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기업이 규제를 피하려면 총수의 기존 보유 지분을 팔아야 하고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사들여야 하는 등 기업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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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