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월→9월→12월투자계약 3번째 연장EU 몽니-정치권 외면-지역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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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또다시 미뤄지게 됐다. 2019년 시작된 기업결합 절차가 3년째 이어지면서 사실상 무산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과 대주주 KDB산업은행은 지난달까지였던 현물출자 및 투자계약 기간을 오는 12월31일까지로 연장했다.투자계약 기간 연장은 이번에 3번째다. 당초 지난 3월까지 였던 것에서 6월로 1차례 연장됐고, 다시 9월로 재연장됐다. 3번째 연장까지 이어진 이유는 EU집행부의 경쟁국 기업결합 심사서를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엄격하고 조선사 고객인 주요 선사들이 밀집한 EU는 두 기업의 합병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다.EU집행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두 기업의 합병으로 LNG 선박의 독과점이 형성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LNG선박 시장점유율은 60%에 달한다. LNG선박은 탄소중립 규제를 강화시키는 국제해사기구(IMO)의 방침을 등에 업고 고가에 팔리고 있다. 영하 163˚C 극저온의 액화천연가스를 실어나르는 LNG운반선은 척당 2억 달러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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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은 내부에도 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가 위치한 경남 거제시는 올해 초부터 매각반대 입장을 공식화하고 인수합병 저지에 사활을 걸었다. 현대중공업 그룹으로 인수되면 거제 조선소 규모가 축소돼 지역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논리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 25만 거제시민의 생존권과 지역경제의 생사가 달려 있는 사안"이라며 "매각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신규 일감이 현대중공업으로 집중돼 지역경제를 수렁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했다.현대중공업그룹도 EU집행부와의 접촉면을 늘리며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중과부적으로 보인다. 과반이 넘는 LNG선박 점유율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기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EU 요구대로 LNG선박 비중을 낮추게 되면 실적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국 등 경쟁국 조선소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현대중공업그룹 내부에서는 합병실패를 감안한 시나리오도 검토했다는 후문도 나온다.정치권 관심도 시들하다. 수많은 지역 주민과 협력 업체 직원들의 '표심'이 달린 현안인 만큼 정치권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날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과 관련해 출석이 요구된 인사는 단 2명 뿐이다. 그나마 거제시를 지역구로 하는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참고인으로 부른 사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장동 사태가 터지며 여야 모두 특정 이슈에 매몰된 상황"이라며 "플랫폼 사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택배종사자에 대한 처우 등 선거철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가 넘쳐나고 있어 3년 전 이슈를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