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민생침해 탈세사범에 전력발전·설비업자 포함 논란文정부 재생에너지·전기료 폭탄 이슈 오버랩… '정치적 중립' 구설"국민 여론이 원했다"?… 원칙 세워 공정하게 선정·조사해야
  • ▲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이 지난 6일 민생침해 탈세자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국세청
    ▲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이 지난 6일 민생침해 탈세자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국세청
    "국민 대다수가 국세청이 나서서 세무조사 해주길 바라는 여론이 있었다."

    민생침해 탈세자 세무조사 대상에 전력 발전·설비업자가 왜 포함됐는지에 대한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의 답변이다.

    국세청은 지난 6일 '공정과 준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민생탈세자 세무조사' 브리핑에서 고리·불법 대부업자, 고액 수강료 학원사업자, 고가 음식·숙박업자, 전력 발전·설비 사업자 등 75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소득을 은닉하거나, '자녀 입시'라는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고액의 수강료를 받고 탈세한 학원 사업자,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여행 수요를 악용해 탈세한 숙박업자 등에 대해선 수긍이 가지만, 전력발전·설비업자가 민생침해 탈세 대상에 들어간 것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됐다.

    국세청은 이들이 신재생에너지 관련 정부의 보조금 지급 정책을 통해 태양광 설치 등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남다른 사업기회가 생겼지만, 탈세를 했기 때문에 민생침해 탈세자라고 설명했다.

    민생침해 탈세자이든, 지능적 탈세자이든 어떤 종류의 탈세이든간에 탈세를 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세무조사를 하고 세금을 추징하는 것이 정당하다.

    다만 세무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사대상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선정돼 조사가 진행됐냐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있어 국세청은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 정치적 세무조사를 했다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세청의 정치적 세무조사 문제를 파헤치겠다며 탄생한 '국세행정개혁TF'는 지난 2008년 시행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비롯해 총 5건의 조사가 정치적 세무조사였다는 결과를 내놨다. 조사대상자 선정 자체가 불투명했다는 것이다.

    세무조사 대상 선정 사유는 국세기본법(제81조의6)에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정기조사의 경우 △불성실 혐의가 있는 경우 △최근 4과세기간(4년) 같은 세목의 세무조사를 받지 않은 경우 △무작위 추출방식의 표본조사 규정에 따라 조사대상을 선정한다. 정기조사는 대부분 일정규모 이상의 법인에 대해 4~5년 주기로 행해지는 것으로 예측이 가능해 선정 기준에 대한 시비가 없는 편이다.

    문제는 비정기조사다. 비정기조사 대상 선정도 △납세협력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사실과 다른 혐의가 있는 경우 △구체적인 탈세제보가 있는 경우 △탈루 등 명백한 자료가 있는 경우 △세무공무원에게 금품제공이나 이를 알선한 경우 등으로 국세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비정기조사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갑자기 조사에 착수하기 때문에 납세자 입장에선 '저승사자'나 다름없이 느껴진다. 비정기조사만을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저승사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세기본법에 명시된 사유에만 해당한다면 유명 연예인이든, 웹툰작가, 유튜버를 비롯해 부동산 탈세자 등이 세무조사를 받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국세청이 발표하는 기획 세무조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 때는 지하경제 양성화 관련 세무조사, 문재인 정부 때는 부동산 거래 탈루·코로나19 마스크 매점매석 세무조사, 윤석열 정부 들어선 민생침해 탈세자 세무조사를 주로 하고 있다.

    국세청은 전날 보도자료에서 민생침해 탈세자에 대해 2019년 181명, 2020년 178명, 2021년 181명 등 총 540명을 조사해 총 6146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문재인 정부 시절 민생침해 탈세자에 관한 기획 세무조사를 발표한 적은 있었지만,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에 비하면 극히 일부였다.

    "왜 하필 지금 민생침해 탈세자에 대한 조사를 하느냐"라는 질문에 국세청은 "특별히 지금 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해오던 조사"라고 답변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 브리핑에서도 "왜 부동산 세무조사를 하느냐"라는 질문에 국세청은 똑같은 답변을 했다.

    이 말인즉슨 국세청이 관련 세무조사를 1년 내내 시행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 입맛에 따라 조사유형을 골라내 언론에 공개한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동안 해오던 세무조사 중에서 정권별 입맛에 맞는 조사결과를 골라내 발표만 하는 거라면 그나마 낫다. 안 하던 것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끼워맞추듯 성과처럼 내놓으면 국민은 국세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번 전력발전·설비업자 세무조사는 2가지 측면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전 정부에서 밀어붙였던 신재생에너지 정책, 다른 하나는 요즘 말 그대로 핫한 전기요금 인상이다. 국세청이 이번 민생침해 탈세사범 조사대상을 선정하면서 이 2가지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현 정부 들어, 이번에는 전력설비·발전업자가 조사대상이라고 발표했지만, 다음에는 어떤 업종이 민생침해 탈세사범의 범주에 포함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세무조사 해주길 바라는 여론이 있었다"는 오 조사국장의 말을 빌리면, 어쩌면 다음 번엔 '1마리에 3만원' 시대를 연 치킨업계가, 주세 인상을 빌미로 가격인상설이 도는 '서민술' 소주업계가 '여론'에 떠밀려 아니면 그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에 떠밀려 세무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국세청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경제권을 침해한다. 그만큼 공정해야 하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조세저항 등의 국민 반발이 없다. 국가정책 또는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세무조사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구설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세청이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