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2.6조원 적자…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은 하세월한전공대, 출연금 무단전용·법인카드 불법 사용 적발감사원, 한전 직원가족 태양광사업 감사… 조사대상 방대
  • ▲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 ⓒ연합뉴스
    ▲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 ⓒ연합뉴스
    한국전력이 사상 최대 적자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KENTECH)에 대한 감사까지 겹치면서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2분기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하는 한전은 강력한 자구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한전공대의 출연금 무단전용 의혹이 확산하면서 자구노력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4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전남 나주에 있는 한전공대에 대해 현장감사를 벌이기로 했다. 감사는 지난해 3월 개교 이후 현재까지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이뤄지며 내용에 따라 감사기간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전공대에 대한 감사 착수는 지난해 9월 한전공대 업무진단 컨설팅 결과를 여당이 공개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업무진단 컨설팅 결과, 한전공대 임직원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출연금 391억 원 중 208억 원을 임직원 인건비를 올리는 데 쓰는 등 무단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더해 법인카드로 업무와 무관한 음향기기와 신발건조기 등을 구입하는 등 16억7000만 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교수들의 정착연구비도 지원대상 선정과 평가절차 검토 없이 최대 금액을 지급하는 등 과학기술원(KAIST) 등과 비교해 10배나 많게 책정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한전과 한전공대의 도덕적 해이가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비판한 데 더해 한전공대 이사장을 겸하는 정승일 사장이 한전공대에 대한 업무컨설팅 결과를 산업부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급격히 냉랭해졌다. 가뜩이나 2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자영업자와 서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한전이 재정건전화를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기도 전에, 한전공대에 대한 비리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해 32조6000억 원쯤의 사상 최대 적자를 냈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한전공대에 대해 1500억 원쯤의 출연금을 내야 한다. 한전공대의 설립·운영비는 오는 2031년까지 1조6110억 원이다. 이 중 한전은 설립비 6210억 원, 운영비 3600억 원쯤을 부담해야 한다. 한전이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해서 내야하는 출연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상 최대의 적자로 한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전공대에 대한 수천억 원의 출연금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전공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2017년 대선 과정에서 호남의 민심을 잡기 위해 에너지전문대학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문 전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인 지난해 3월 부랴부랴 개교했다. 축구장 48개 면적에 겨우 본관동 하나만 지어진 채 문을 열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한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법 태양광 사업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대상이 방대하다 보니 아직 조사 기간마저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태양광 발전은 문재인 정부가 장려한 신재생에너지 핵심 사업으로 한전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가족들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정 사장은 지난 21일 입장문을 내고 "한전 일부 직원 가족의 태양광사업 영위 및 한전공대 업무진단 결과 등에 대해 한전은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감사원과 산업부 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결과에 따라 제도·절차 개선 등 예방 대책은 물론 철저한 자정 조치를 이른 시일 내에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조직 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국민 편익 제고 방안 등이 포함된 추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며 "한전과 발전 6사를 포함한 전력그룹사는 전기요금 조정에 앞서 국민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20조 원 이상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전은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전은 "현재 전력 판매가격이 전력 구입가격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어 요금 조정이 지연될 경우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잖다.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당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0일 열린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에서 "한전이 요금을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여론몰이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여당 입장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제대로 된 자구노력을 내놓기도 전에 터지는 비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요금만 올릴 경우 여당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한전은 오는 2026년까지 14조 원쯤의 재정건전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여당의 추가 자구책 요구에 20조 원의 재정건전화 대책을 제시한 상태다.

    구체적인 이행계획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세부적인 내용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여당의 입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달 안에 2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결정나기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애초 이달 안으로 결론을 낼 생각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에 국빈 방문하면서 사실상 논의할 시간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까지 한전이 어떤 자구책을 내놓는 지가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