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채 201.4兆 '역대 최다'… 추가 영업손실에 한전채 발행도 빨간불文정부 '포퓰리즘'이 문제 키워… 역마진 구조 개선 없이 매해 요금 동결새 리더십 절실한데 '낙하산' 논란… "비전문가" vs "외압막을줄 정치인" 분분
  •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주시하고 있다.ⓒ연합뉴스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주시하고 있다.ⓒ연합뉴스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말미암아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는 데도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대선과 6·1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전기요금을 동결해온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역풍을 한국전력공사가 고스란히 맞고 있다.

    한전은 2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빚이 쌓인 데다 올해 부진한 실적으로 인해 내년 한전채 발행 규모도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빚 돌려막기'조차 녹록잖을 처지에 놓였다. 더구나 이런 위기를 앞장서 타개해야 할 수장은 공석인 데다 차기 사장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으로 에너지 분야와는 거리가 먼 '낙하산' 인사가 거론되고 있어 첩첩난관을 뚫고 나가기가 쉽잖을 전망이다.

    22일 한전의 올해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한전의 총 부채는 201조 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192조 8000억 원에서 반 년만에 8조 원이 불어나면서 앞자릿수를 바꿨다. 한전의 부채가 200조 원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에도 한전의 영업손실은 누적됐지만, 지난 2021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을 당시 요금 인상 요인을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47조여 원이 넘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 한전의 부채 규모는 △2020년 말 132조 5000억 원 △2021년 말 145조 8000억 원 △2022년 말 192조 8000억 원 순으로 불어났다.

    올 3분기(7~9월)에는 긍정적인 전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3분기 전기요금은 동결됐지만, 앞서 1분기(13.1원)과 2분기(8원)에 연이어 올리면서 판매·구매단가의 간극을 좁혔다. 국제 에너지 시장이 하향 안정화에 접어들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에선 한전이 3분기에는 10개월 만의 적자 행진을 접고 흑자 전환이 이뤄질 거라고 내다봤다. 예상 수익 규모는 1조 7000억 원쯤이다.

    문제는 흑자 기조를 이어가지 못하고 4분기(10~12월)에 다시 5000억 원의 적자를 낼 것이라고 예측된다는 점이다. 현재 상승 중인 국제 유가가 시차를 두고 한전의 수익을 끌어내릴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올해 한전의 총 누적 적자는 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전의 재무 상태는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다. 4분기에는 한전 차원에서 더욱 강력히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없잖다. 추가 손실이 현실화할 경우 내년에는 한전채 발행 규모마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한 재정 위험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전은 전기요금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면 한전채를 발행해 전기구매 대금과 시설 유지비 등으로 써왔다. 한전은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보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20조 9200억 원의 5배인 104조 6000억 원까지 한전채 발행이 가능하다. 지난달 말 현재 한전은 가능 한도의 75% 선인 78조 9000억 원을 발행했다.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로 인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규모가 줄어든다면 한전채 발행 규모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알려진 것처럼 7조 원의 추가 영업손실이 난다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는 14조 원쯤으로 줄어들게 돼 한전채 발행 규모는 70조 원쯤이 된다. 올해 발행 가능규모의 67% 수준에 그친다. 7월까지 발행한 78조 9000억 원보다도 적은 금액으로 1년을 보내야 하는 셈이다.
  • ▲ 한국전력공사 전경.ⓒ연합뉴스
    ▲ 한국전력공사 전경.ⓒ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이런 사태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예고돼 왔던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 정부가 포퓰리즘에 빠져 요금 인상을 덮고 미루면서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전의 적자 폭은 해가 갈수록 크게 뛰어 1년 새 13조 원쯤에서 47조 원쯤으로 대폭 확대됐고, 올해 들어 결국 최초로 200조 원대에 진입했다.

    한전 적자의 근본적인 문제인 역마진 구조는 일찍이 문 정부 시절부터 지적됐다. 역마진은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 구매단가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판매단가보다 커서 발생한다. 당시 문 정부는 이런 모순적인 산업 구조를 개혁하려는 노력 없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기요금도 매 분기마다 사실상 동결했다. '전기요금 원가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급등했던 에너지 수입가격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았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전은 악화한 재무 상태와 더불어 수장 리스크도 떠안고 있는 상태다. 여러 위기로 어느 때보다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현재 업계 등에서 차기 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정치인 출신이다.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낙하산' 성격의 인사다.

    유력하게 하마평이 도는 인물은 김동철 바른미래당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캠프에서 특별고문을 맡았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김 전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던 경험이 있지만, 이를 에너지 분야의 경력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한전 차기 사장은 이번 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낙점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한전 이사회의 주주총회와 산업부 장관의 임명 제청, 대통령 임명 등을 거치면 절차가 마무리된다. 한전은 이르면 이달 안에 임명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차기 사장을 둘러싼 한전 안팎의 의견은 엇갈린다. 먼저 에너지 공기업들에 모두 윤 대통령의 측근 격인 인사를 임명하는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한국가스공사나 한국지역난방공사 등의 수장을 보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라며 "관련 경력이 없는 '비전문가'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직을 잘 이끌어갈지 의구심이 든다"고 토로했다.

    한전은 정치인 출신 사장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견해다. 한전 한 관계자는 "지금 조직에는 실무에 통달한 전문가보다 외압을 노련하게 견딜 정치인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경영 정상화와 전기요금 인상 추진과 관련해 정부나 국민의 반발에 맞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성보다는 어수선한 조직을 잘 추스릴 수 있는 인물이 적임자란 의견도 있다. 다른 한전 관계자는 "소란스러운 내부를 진정시키고 잘 이끌어준다면 경력과는 상관 없이 어느 조직에서든 훌륭한 리더일 것"이라며 "강단 있는 리더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안정된 상태에서 기관이 운영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