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사태·채권 돌려막기·PF 부실 여파 현재진행형무너진 자본시장 신뢰 회복 최우선 과제신년사서 "내부통제 강화" 한목소리…관련 조직 확대 개편
  • 신년 증권업계가 위기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채권형 랩·신탁 상품 돌려막기, 주가조작 사태 등으로 무너진 자본 시장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모습이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대표들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를 당부했다.

    김미섭·허선호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에 만연한 리스크 불감증과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한 투자와 경영의 의사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며 "금융업은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잘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도 "우리는 지금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리스크 관리에서 벗어나 시스템 기반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를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면서 "리스크관리본부만이 아니라 모든 영업 조직이 우선 순위로 챙겨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최근 몇년간 '어느 회사가 금리 급등의 영향을 덜 받았는가', '예상치 못한 위기를 잘 피해갈 수 있었는가'가 회사의 주요 성과이자 시장에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주된 요소였다"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고객과 자신과 회사를 지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리스크관리 전문가로 CEO 교체…내부통제 부서 강화

    증권사 수장들이 새해 벽두부터 입 모아 원칙과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는 건 지난해 유독 증권업계에 사건 사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차액결제거래(CFD) 사태로 떠안은 대규모 미수금, 주가조작 사건 등 뿐만 아니라 사모 전환사채(CB) 불건전 영업, 부동산 PF 부실과 홍콩 상장지수증권(ELS) 대란으로 인한 시장 리스크는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금융당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미흡으로 인한 사고 시 최종 책임자로 최고경영자(CEO)를 명시하는 책무구조도 도입에 나섰고, 이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연내 시행된다.

    지난 연말 증권사들은 그간 미흡했던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를 개선하기 위해 CEO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메리츠증권은 메리츠금융지주에서 리스크관리 부문을 이끌어온 온 장원재 대표를 새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삼성증권에서 최고리스크책임관리자(CRO)를 지낸 바 있다.

    삼성증권의 새로운 대표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출신이자 대표 전략통인 박종문 사장이다. 그는 채권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그룹 재무팀에 발탁된 뒤 보험·증권·카드사업 전략을 두루 살폈다. 키움증권도 엄주성 대표를 새로 선임했다. 엄 대표는 이 회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활동하며 전략 수립·리스크 관리 역량을 쌓아왔다.

    증권업계는 연말 조직 개편에서도 내부통제 강화에 무게를 실었다.

    신한투자증권은 리스크관리본부를 그룹으로 승격했다. 고객리스크관리부를 신설해 고객자산 보호를 강화하며, 준법감시본부 내에 있던 내부통제운영부를 준법경영부로 확대 개편했다.

    NH투자증권은 기존 준법감시본부를 준법지원본부로 변경하고 기획 기능을 담당하는 준법기획팀을 본부 직속으로 신설했다.

    KB증권은 시장리스크부 내에 고객자산리스크 전담 조직을 신설해 고객 수익률 점검 등 고객 가치 제고를 위한 고객자산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하나증권은 내부통제기능 강화를 위해 소비자보호 관련 조직을 재정비할 예정이다.

    대형 증권사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에 대한 당국의 압박이 상당하다"면서 "지난해부터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됐던 만큼 각사도 고삐를 죄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