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정제마진 개선에 잇따라 호실적 발표유가 뛰자 정치권서 ‘횡재세’ 도입 언급적자 때는 나몰라라더니… 정유업계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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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확대로 국제유가가 크게 뛰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된 국내 정유사들이 올해 1분기 호실적을 거뒀다. 다만 1분기 실적이 공개되자 정치권에서 다시 횡재세 부과 논란이 불거져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은 연결 기준 영업이익 454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는 11.9% 줄었으나 564억원 영업손실을 낸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흑자 전환했다. 매출은 9조308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확대됐다. 

    이날 1분기 실적을 발표한 SK이노베이션은 석유사업 부문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7563억원 늘어난 5911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HD현대오일뱅크도 정유 부문이 219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직전 분기 대비 흑자로 돌아섰고 아직 실적발표 전인 GS칼텍스도 정유사업에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는 수출 부문에서도 올해 1분기 1억2690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며 역대 1분기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정유업계의 이 같은 호실적은 지난해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하락 영향으로 저조한 실적을 낸 기저효과와 더불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란·이스라엘 간 충돌 등 중동 정세 악화로 원유 공급에 따른 시장 불안이 높아져 1분기 국제유가가 오른 것이 주된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정유사의 수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등 원류비를 뺀 정제마진이다. 통상 배럴당 4∼5달러를 손익 기준선으로 보는데, 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정제마진은 배럴당 12.6달러 수준이었고 2월에는 15달러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이익 증가도 1분기 수익성 개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고유가에 따른 수익성 유지는 석유 수요가 많아져야 가능하다. 전쟁 등 지정학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글로벌 경기가 위축돼 수요가 줄어들고 정제마진도 하락해 고유가 효과가 감소할 우려가 높다.

    모처럼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정유사들이 마음껏 웃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이른 바 횡재세 논란이다.

    지난 2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유가 시대에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횡재세 도입을 제안했다. 초과이윤세로도 불리는 횡재세는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 이익을 얻을 경우 법인세 외에 추가로 징수하는 세금을 뜻한다. 

    정유업계는 횡재세 도입에 대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적자를 기록했을 때에는 잠잠하다가, 불황을 이겨내자마자 도입을 논의된다는 게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국내 정유사들은 조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큰 호황을 누렸지만 단 1년 만인 지난해 상반기 적자 전환하는 등 경영실적이 크게 뒷걸음질 친 바 있다.

    아울러 정유사 영업이익의 큰 비중은 낮은 가격에 들여온 원유의 가치가 국제유가 상승 시 더 높게 평가받는 '재고평가이익'에서 발생한다. 현재 국제 유가가 상승한 만큼 향후에는 유가 하락 시에는 재고평가이익이 낮아져 손실을 볼 가능성도 크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수요 감소 우려가 커져 당장 2분기부터는 높은 실적을 보이기 어렵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 경우 오히려 정제마진이 1분기보다 하락해 횡재세 도입 근거인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국내 정유사는 사업구조상 원유를 직접 채굴·시추해 판매하는 영국의 BP, 셸 등 해외 기업과 달리 정제만을 전문으로 한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뒤 제품으로 판매하는 정제마진으로 수익을 얻는다.

    이 같은 사업구조 차이를 고려하면 해외에 적용됐던 횡재세 도입 사례와는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유사에 횡재세를 도입한 사례가 있는 영국 역시 정제 사업만 하는 회사는 횡재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2006년 고유가가 도래하자 횡재세 도입이 논의됐지만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오히려 원유 생산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 등이 힘을 얻으며 실행되지는 않았다. 실제 1980년 석유 회사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자 세제가 폐지된 1988년까지 미국 내 원유 생산은 연간 1.2~8.0% 줄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