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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뻣뻣한 독불장군'이다.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그를 보고 느낀 점이다.
우선 주 대표는 최근 한화그룹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은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언론에서 제 임기와 거취에 대해 추측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제 임기는 내년 3월말까지로 돼 있다”며 “회사가 굉장히 어려울 때 오라고 해서 (구조조정 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임기를 보장해 달라고 했고 약속을 받았다”며 남은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그룹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이사회가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그는 “저희 회사의 이사회는 누가 시킨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니고,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하기 때문에 (한화그룹에서) 해임을 시키려 한다는 것은 과하다”며 “이사회에서 잘 판단해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그룹에 항명을 공식화한 것이다.
현재 한화투자증권 이사회는 총 6명이다. 사내이사로 주진형 사장, 박재황 부사장이 있다. 사외이사로는 정의용 전 외교통상부 관료(17대 국회의원), 정규상 성균관대학교 총장, 송규수 전 대전시티즌 대표이사, 이준행 서울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등이다. 정말 이사회가 주 대표 뜻대로 움직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는 리포트를 한화투자증권에서 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 대표는 정우택 정무위원장에게 “증인으로 올 때 심문 취지랑 다른 질문에도 제가 대답을 해야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정 위원장이 대답하라고 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면서 그런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해당 리포트가 나온 것은 이미 언론에 다 나온 사실임에도 국회를 상대로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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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 문제가 됐던 투자권유대행인 제도 폐지를 이제라도 원상 복구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주 대표는 “그럴 의향이 없다”며 “검토는 해보겠다”고 답했다. 2년 전 주진형 대표가 취임하기 전 2174명이던 투자권유대행인이 현재 282명으로 90%나 줄었다. 특히 2016년 4월 1일부로 투자권유대행인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역시 구조조정 전문가답게 냉혹한 CEO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잠시 정회를 선언하고 오후 5시 15분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흘러 국감이 재개됐지만, 증인석에는 주 대표만 보이지 않았다. 국회 직원들이 서둘러 주 대표를 찾았고, 결국 주 대표만 5분 늦게 증인석에 앉았다. 국감에 출석한 증인의 자세라고 보이지 않는다.
오후 8시쯤 주 대표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가 모두 끝났다. 국감장을 나서는 주 대표에게 기자가 단독으로 인사를 건냈다. 증인 출석을 마친 소감을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주 대표는 “기자분이랑 얘기하지 않는다”고 쏘아 붙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되묻자,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기자랑 만난 적이 없다”며 “그러니까 답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론에 대해 적대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끝으로 홍보팀에 지시한 사항도 가관이다. 주 대표는 “여기서 우리가 관심 받은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 보통으로 보도자료를 뿌리라”고 말했다. 어차피 오늘 정무위 국감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이목이 쏠릴테니, 한화투자증권은 조용히 묻어가겠다는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해임 통보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룹과 계속해서 갈등을 야기하는 주 대표가 내년 3월말까지 임기를 채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고민해볼 문제다. 틈바구니에 낀 한화투자증권 임직원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신껏 소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동빈 회장처럼 자세를 낮출 필요도 있어 보인다. 언론에 대해서도 대립각을 세울 것이 아니라, 호의적인 마인드를 갖길 희망한다. 언론은 주진형 대표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은 지금 이 순간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