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올해도 발생 가능성 있어"… AI에 구제역 겹칠까 축산농 노심초사AI 확산 파죽지세에 역대 최대 피해 우려… 닭·오리 도살 900만 마리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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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사상 최대의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설상가상 구제역 발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역당국인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구제역 백신 접종 횟수를 놓고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기본적인 방역행정에서부터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파죽지세… 도살처분 900만 마리 육박
9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4~6일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충남 아산·전북 정읍의 오리 농가와 충북 충주의 토종닭 농가, 세종시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 등 4곳에 대한 정밀검사 결과 전부 고병원성 확진이 내려졌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의 산란계 사육농가와 충북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의 오리 사육농가에서 AI 의심 신고가 들어온 이후 이달 8일까지 전국의 가금농가에서 총 43건의 신고가 접수돼 37건이 고병원성 확진을 받았다. 6건은 검사 중이다.
지역별로는 충북 11건, 경기 11건, 충남 6건, 전남 4건, 전북 2건, 세종 3건 등이다. 7개 시·도, 21개 시·군 105개 농가에서 AI가 발병했다.
AI 확산 방지를 위한 예방적 조처를 포함해 8일까지 도살처분 후 묻은 닭·오리는 177농가에서 654만5000마리에 달한다. 산란계 51농가 421만1000마리, 육용오리 88농가 93만3000마리, 육계 2농가 21만8000마리, 육용씨닭 2농가 11만8000마리 등이다.
앞으로 32농가에서 243만1000마리를 도살 처분할 예정이어서 피해 규모는 900만 마리에 육박할 전망이다.
AI 피해가 가장 컸던 2014년 100여일간 1400만 마리가 도살 처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역대 최단기간 내 최대 피해가 우려된다.
◇전문가 "구제역 발생 가능성 배제 못 해"
기온이 떨어지면서 바이러스 활동이 왕성해지고 있다. 축산농가가 AI 이후 구제역이 불청객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긴장하는 이유다.
구제역은 2014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 말까지 총 185건이 발생했다. 돼지·소 17만2798마리를 도살 처분했다. 보상액은 638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1월부터 충남과 전북에서 구제역이 확인돼 3개월여 동안 돼지 3만3073마리가 도살 처분됐다. 보상금 추산액은 59억원이다.
축산 전문가들은 올해도 구제역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구제역 바이러스는 국내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백신을 접종하고 있어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감시망에도 걸리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국내에 잠재적으로 상주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백신을 접종하고 있으니 AI처럼 폭발적으로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발병하면 축산농가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검역본부 집계로는 10월 말 현재 구제역 백신 접종에 따른 항체형성률은 전국 평균 63% 수준이다. 14개 시·도 1만8000여마리를 검사한 결과다. 부산지역이 86.1%로 가장 높고 울산(73.9%), 제주(68.1%), 경북(67.6%), 강원(67.3%) 등의 순이다. 부산, 울산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농가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검역본부 설명이다.
인천(55.0%), 전북(56.9%), 경남(58.0%) 등은 항체형성률이 낮게 나왔다. 전북은 올 초 구제역이 발생했던 곳임에도 항체형성률이 낮았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항체형성률이 낮은 수준은 아니다"며 "항체형성의 기준치를 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돼지와 소에 항체는 존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검역본부 설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접종 후 돼지와 소에 항체가 생겼더라도 그 수가 미미해 기준치를 밑돌면 충분한 방어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즉, 백신 주사를 맞았더라도 37%에 해당하는 소와 돼지가 구제역 발생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발등의 불'인 AI 차단방역에 주력하면서도 구제역 방역 대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올 초 구제역이 발생했던 충남의 경우 AI가 발생한 천안·아산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공주와 논산, 홍성 등 인접 시·군에서 과거 구제역이 발생한 전력이 있어서다.
충남도 관계자는 "소는 백신투여 효과가 거의 100%여서 안심이지만, 돼지는 종의 특성상 항체 형성 속도가 더디고 효율이 낮아 양돈농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올 초 구제역이 발생했던 만큼 10월에 일제 추가 접종을 시행하고 색출검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돼지 출하 시기에 구제역 방어력 떨어져
일선 축산농가에서는 AI에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까지 발생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방역당국의 방역정책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충남도 설명으로는 현재 구제역 백신 공급량에는 여유가 있다. 예산축협만 해도 현재 1만 마리분의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정부에서 백신 수입국 다변화를 꾀하면서 다소 저렴한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산 백신을 일부 시범 도입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구제역이 발생했던 올 초만 해도 백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인근 지자체나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불안한 농가에서 추가 접종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수급이 달렸다는 것이다.
현재 농식품부는 1마리당 1회 접종을 기준으로 삼는다. 예방접종 명령을 어기면 위반 횟수에 따라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도 매긴다. 농식품부가 1회 접종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돼지의 경우 보통 생후 6~7개월이면 시장 출하를 위해 도축하기 때문이다.
대개 어미돼지가 백신을 맞으면 새끼돼지에 모체이행항체가 생기므로 그 효력이 떨어지는 생후 8주쯤 1회 접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출하할 즈음에 백신 효력이 떨어져 방어력이 약화한다는 점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백신을 평균 6~7개월마다 맞는 어미돼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곤 한다"면서 "특히 비육돈은 보통 출하 시기에 발병하는 데 이때쯤 백신 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검역본부는 비육돈이 출하되기 전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1회 접종 후 4개월쯤 지나 추가 접종하면 방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므로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역본부와 농식품부의 백신 접종 권장 횟수에 차이가 나는 셈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백신 접종 횟수 등은 검역본부가 아니라 가축방역심의회에서 결정한다"며 "과거에는 백신 접종 횟수가 2회였지만, 2011~2012년께 1회로 축소됐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여러 찬반 의견이 나왔을 것"이라며 "양돈협회의 경우 출하 시기에 추가 접종하면 돼지 생육이 저하돼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내며 반대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AI나 구제역 발생이 연례행사처럼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원칙을 가지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