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전 정부 탓" vs 靑 "기다려달라"정부여당만 정책실패 외면
  • ▲ 소득 양극화 심화.ⓒ연합뉴스
    ▲ 소득 양극화 심화.ⓒ연합뉴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믿고 기다려달라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아우성친다. 지지기반이 흔들리는 데도 정부는 실험적인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일 기세다. 일각에선 정부가 불감증에 걸렸다고 지적한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저소득층의 소득은 급감 추세를 이어갔지만, 고소득층 가계의 소득은 역대 최대의 급증세를 보여 소득분배 양극화가 심화했다.

    2분기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2인 이상 가구)은 월평균 132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 -8.0%를 기록했던 1분기보다 감소 폭은 소폭 완화했으나 2분기 기준으로는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중간계층인 소득 상위 40~60%(3분위) 가계 소득도 0.1% 줄어 1분기(-0.3%)에 이어 감소세를 이어갔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5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월평균 913만4900원으로 10.3% 증가했다.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증가 폭을 보이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빈곤층 가구의 근로소득이 월평균 51만8000원으로 지난해보다 15.9% 줄었다.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다. 정부나 다른 가구로부터 받은 이전소득은 59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일해서 번 근로소득보다 정부의 보조금 등으로 받은 소득이 더 많은 셈이다. 정부가 나랏돈을 풀었기 때문으로, 야당에서 "고기 잡는 법 대신 고기를 잡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일자리 부진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을 중심으로, 임시·일용직에서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고용 쇼크의 주된 원인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꼽는다. 하지만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을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다.
  • ▲ 지난 19일 고용 쇼크 관련 긴급 당·정·청 회의에서 이야기 나누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왼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연합뉴스
    ▲ 지난 19일 고용 쇼크 관련 긴급 당·정·청 회의에서 이야기 나누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왼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연합뉴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혜택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업장의 노조가 있는 근로자에게 집중되고 오히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통계가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정책 실패를 시인하지 않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고용 악화와 관련 "송구스럽지만,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띄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장 정책실장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생산가능인구가 2년 전보다 20만명 줄어드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취업자 수가 매년 20만~30만명 느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며 "새 노동공급 구조에선 10만~15만명이면 정상적인 증가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장 정책실장은 최저임금과 관련해선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전부가 아니다. 직접 영향받는 분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어 더 부각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가계소득을 늘려주는 부분은 크게 임금근로자 정책과 자영업자 정책 두 가지가 있다"며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가 300만명,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받는 근로자가 230만명으로, 전체 소득을 늘리는 근로자로 봐도 10%"라고 부연했다.

    인구감소가 예측 가능한 통계임에도 목표를 무리하게 잡았다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혼란에 대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지속해서 추진할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태도에 가깝다는 견해다.
  • ▲ 일자리 찾기.ⓒ연합뉴스
    ▲ 일자리 찾기.ⓒ연합뉴스
    정부는 23일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활력을 위해 내년도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소상공인·자영업자와 학계 전문가들은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우려한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은 자영업자 경영난과 관련해 정부가 '고용원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현실을 모른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식당에서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아주머니처럼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인구가 상당한 규모"라면서 "주로 현찰을 받고 4대 보험 가입을 꺼리는 이들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은데 식당 등이 문을 닫으면 이들의 소득과 지출이 줄고 그 여파는 기업의 생산·투자 감소, 물가 상승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지회장은 "지금은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소상공인·자영업자 어려움이 주목받고 있으나 내년이 되면 기업의 생산 감소, 고용불안 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벤처 분야도 정부 정책에 우려를 나타내긴 마찬가지다. 안기돈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벤처 창업 후 어느 정도 안정화될 때까지 보통 7년쯤 걸린다"며 "정보통신기술(ICT) 등에 특화된 대전 지역 벤처기업의 경우 61% 정도가 10년 미만 기업이고, 58%가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걸음마 단계인 소규모 기업이 많다. 이들 기업은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에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안 교수는 "최근 전국의 벤처기업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을 경영하는 데 심리적 위축 요인이 된다고 호소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투자의 문제는 당장보다 미래의 가치를 보고 하는 것이지만, 고용은 다른 문제"라며 "기업은 당장 어려우니 근로자를 줄이는 건데 정부를 믿고 기다리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정부의 기업 지원이 신입사원 위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청년 고용 문제와 관련해) 신입사원에게 지원이 몰리다 보니 기존 직원이 상대적 박탈감에 그만두는 사례가 적잖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이 되레 기존 구직자의 이직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정부가 직접 나서 무엇을 하려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고용을 활성화하려면 기업이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직접 생태계 안에 들어와서 뭘 하려 한다"며 "세계적인 추세를 봐도 정부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앞장설 테니 믿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