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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밤 9시 20분. 회사 메일로 현대차 자료 하나가 전달됐다. 직감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란걸 눈치챘다.
현대차 노사가 임금동결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단 내용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 사상 세번째란다. 년수로는 11년만이다.
의미부여하는 내용들이 이어졌다.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 노사 공감대에 이뤄진 완벽품질 확보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노조 역시 코로나19 위기가 심상찮다는걸 깨닫고 있구나란 걸 알 수 있었다. 25일로 예정된 올해 찬반투표는 별다른 무리없이 가결되겠구나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기자만의 착각이었을까. 23일 현대차 일부 노조원이 "성과급 150%가 적다"라 반발했단 소식이 들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잠정 합의안을 온몸으로 거부하자"고도 주장했다.
실망감을 넘어 큰 걱정으로 다가온다. 일부 조합원들의 이기적인 행태가 현대차를 다시 한번 수렁으로 내몰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언태 사장은 이날 곧장 담화문을 통해 노사간 협력을 독려했다. 하 사장은 "어렵게 결단을 내린 만큼 현명한 판단을 당부한다"며 "노사가 함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위한 희망을 만들어 가자"고 했다.
현대차는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대표 기업이다. 그런 만큼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이들의 사소한 결정 하나 하나에도 업계 전체가 주목한다.
현재 국내 완성차 5개사 가운데 임단협을 마무리 한 곳은 쌍용차가 유일하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여전히 이견차를 보이며 진통을 겪고 있다. 기아차 노조 또한 현대모비스의 친환경차 부품 공장 신설에 반대하며 사측과 갈등 중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맏형 격인 현대차가 무분규로 끝내면 업계 큰 모범이 될 수 있다. 자연스레 긍정적인 영향 또한 예상된다.
실제 임단협으로 갈등 중인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임금동결로 올해 협상을 끝낸다면 우리 노조 또한 입장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금껏 귀족노조라는 불명예를 안고 지내왔다. 높은 임금에도 무리하게 강행했던 파업이 국민적 공분을 산 결과였다.
이제 그 불명예를 떨쳐버릴 때다. 지난해에 이어 교섭을 2년 연속 무분규로 마무리한다면, 부정적 이미지도 옅어질 수 있다. 이미지 제고는 장기적으로 판매에도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내일 진행될 현대차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결과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일각에선 성과급 150%에 코로나 격려금 120만원, 주식 10주,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지급은 다른 회사의 경우 언감생심이라며 '무늬만 동결'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임금을 뛰어넘어 사회적 선언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당장 내년부터 전기차 양산이 시작되고 일감은 줄어든다. 프레임-차체-도장-의장-검수로 이어지는 생산라인의 앞단은 모듈화 외주화가 이뤄지고 있다.
5만여 생산직원 중 최소 10%는 유휴인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사가 끝까지 고용안정-미래차 변화 대응-직무교육-품질향상 등 사회적 선언의 문구조정에 매달린 이유다.
현대차와 더불어 조합원들의 미래도 25일 투표에서 던질 한표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