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527억달러·日 15조엔 등 주요국 반도체 보조금 경쟁 격화정부, 반도체 경쟁력 강화 위해 보조금 대신 세제지원 추진"투자 유인책 떨어질 수도" … 10나노 이하 美에 역전 가능성15~25% 세액공제 'K칩스법' 연장 21대 국회서 자동폐기 우려전문가 "국가 차원의 전략·정책 수립 마련 절실"
  • ▲ 반도체ⓒ연합뉴스
    ▲ 반도체ⓒ연합뉴스
    정부가 글로벌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 세제·금융 지원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계 각국이 공격적인 보조금 지급에 열을 올리는 것과 대비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적기를 놓쳐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모든 나라들이 자국 산업 전반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기업에 대해서는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지원해 오고 있다"며 "대기업 감세, 부자 감세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제 지원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액공제를 하면 보조금이 되는 것이니까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지원할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 기업이 국제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게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각국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경쟁에서 뒤쳐져선 안된다는 업계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직접 보조금 불가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최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반도체에 대입하면 선진국은 제조 역량이 떨어져 보조금을 주지만, 우리는 소재·부품·장비와 인프라 등에 재정 지출을 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게 맞다"고 밝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최근 "단순히 대출보다 기업들이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려고 한다"며 "반도체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첨단산업, 이차전지, 바이오, 디스플레이 등 전략 산업을 키우는 데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첨단산업 기금 형태로 만들려고 기재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 전략별(방어·공격·동맹) 주요국 반도체 정책 현황ⓒ 과학기술정책연구원
    ▲ 전략별(방어·공격·동맹) 주요국 반도체 정책 현황ⓒ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그동안 업계에서는 주요국의 경쟁적인 보조금 지원 속에서 세액공제만으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국가들이 나서 반도체 육성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홀로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라며 "속도에 밀리면 경쟁력을 담보하기 힘들어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15~25% 세액공제을 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3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야 간 의견 차가 있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오는 29일 종료될 예정인 21대 국회 임기 내 통과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반면 미국, 일본 등은 반도체 기업의 생산 설비를 자국 내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대규모 보조금을 내걸고 있다. 미국은 5년간 390억달러와 연구개발비 132억달러 등 총 527억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역시 2021년 반도체산업을 살리기 위해 2030년까지 반도체 관련 매출을 2021년의 3배인 15조엔(약 133조원)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설상가상 정부가 소극적인 지원만을 고수하면 반도체 강국 자리마저 내줄 수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표한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회복 탄력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2032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망대로라면 대만(17%)을 제치고 중국(21%)에 이어 2위에 올라선다.

    그러나 10나노미터(1nm=10억분의1m) 이하 한국의 첨단공정 비중은 31%에서 9%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이 2위로 올라서며 한국은 3위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을 앞세워 미국 내 설비 투자를 장려하면서 첨단 공정을 위한 공장 등을 짓는 등 투자가 확대된 데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서는 봤다.

    전문가들은 국가 간 견제에 대한 대응 역량을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각국의 경쟁적 보조금 지급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무역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고 기존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형성하고 있는 기업에는 절대적 불리할 것"이라면서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기업을 집중적으로 견제할 가능성에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가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전략과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면서 "정부의 직접적인 보조금 정책은 이미 타 선진국 대비 뒤처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