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기준대비 매출인식 규모 달라… 부채비율 급증도 우려"'회계논란' 건설업, 부족한 준비에 '적정의견' 못 받을 수도"
  • ▲ 충청권 한 건설공사 현장. ⓒ 뉴데일리경제DB
    ▲ 충청권 한 건설공사 현장. ⓒ 뉴데일리경제DB


    새 회계기준 도입이 100일 밖에 안 남았지만, 아직까지 건설업계에서는 적용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회계기준 변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에 기인한 불감증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2018년 도입되는 IFRS15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마련한 새로운 기업 수익 인식 기법으로 △계약식별 △수행의무식별 △거래가격 산정 △거래가격을 수행의무에 배분 △수행의무 이행시 수익인식 등 다섯 단계 수익인식 모형을 통해 고객과의 계약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통합 수익인식 모형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현행 회계기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수익인식 시점'으로 분석되면서 건설·조선 등 수주산업 기업의 수익 체계와 실적에 영향을 끼쳐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기준으로는 고객에게 제품을 인도하는 시점이나 계약에 따른 진행 상황을 따져 수익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IFRS15가 도입되면 '자산의 통제권'이 고객에게 이전되는 시점에 비로소 수익이 인식되는 것이다. 때문에 단기적으로 건설업계의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30개월가량 소요되는 아파트 공사를 진행할 경우 지반공사를 비롯해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성이 인식되기 마련인데, IFRS15 기준에서는 공사 진행과 무관하게 원가투입 등 비용만 반영되다가 잔금을 치르고 등기이전까지 마무리 짓는 입주시기에 한꺼번에 대규모 매출이 발생되는 것이다.

    특히 자체공사나 대규모 플랜트 공사 등의 경우 기존 방식보다 재무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단순도급 시공사업이라면 공사 진행에 따른 매출만 산출하면 되지만, 자체사업의 경우 수분양자에게 공급이 완료될 때까지 매출이 잡히지 않아 단기적으로 재무제표상 매출 규모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 중도금과 계약금 등이 수익이 아닌 부채로 잡혀 부채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IFRS15가 내년도 이후 소급 적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현재 장부상 수익으로 인식하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선수금으로 수정 반영하게 될 경우 이들 업체의 부채규모와 비율 증가는 단기간 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진행 중인 플랜트 사업의 경우 계약서상 '집행가능한 지급청구권'이 명시돼 있지 않은 계약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건설사 부채 부담이 예상보다 증가하면 수주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이 같은 대대적인 회계상 변화에도 건설업계의 도입 준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특히나 조선업과 함께 대표적인 수주산업으로 분류되는 건설업의 경우 공사진행률에 따라 매출이 반영되다보니 분식회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부족한 준비에 따른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사대금의 회수가능성을 너무 낙관적으로 평가한다던가, 총예정원가를 반영하지 않는 등 '추정의 변경' 방식을 사용해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사례가 적지 않게 적발된 바 있는 건설업계가 새 기준 도입 100일을 앞두고서도 도입에 따른 영향에 대한 판단이 안 섰다는 것은 문제"라며 "이미 새 기준에 대한 영향을 판단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회계기준원이 건설사 47곳과 조선업체 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FRS15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고 차이를 분석하고 있는 건설사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선업체의 경우 4곳 중 3곳이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자산 5000억원 이상 건설사 가운데 IFRS15와 관련, 주요계약 내용을 분석하거나 재무적 영향에 대비하고 있는 곳은 60% 안팎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분석을 완료한 곳은 아직 없었다.

    5000억원 이하 건설사의 경우 적용 준비가 더 미흡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요 계약 내용과 재무적 영향을 분석한 기업은 43.5%에 불과하며 시스템 개선에 나선 곳은 13%에 그쳤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수익기준은 매출이라는 계정과목이 바뀌는 부분인데, 새로운 기준 적용으로 매출이 크게 바뀌는 기업이 제대로 증거를 구비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며 "조선업이나 건설업 등 수주산업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회계논란에 따라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될 외부감사인 입장에서는 적정 의견을 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상장건설 A사 관계자는 "현재 회계법인에 관련 컨설팅을 의뢰한 상태다. 11월 말께 결과를 받아 방향성을 잡아나갈 예정"이라며 "항목별, 사업형태별로 단서 조항들이 다르다보니 일선 현장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 기준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사의 방향과 부합하는 최적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수주산업 내 주요 기업들은 관련 협회를 중심으로 자체공사의 수익인식 시점을 현재와 같이 진행 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약시점이 복잡한 건설업의 경우 새로운 기준에 따른 수익인식 시점 여부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공사 현장에서의 원가 반영 뿐만 아니라 본사 내근직들의 비용까지 반영되면 수익성이 안 좋아졌다가 공사 한 건이 끝나면서 한꺼번에 수익성이 높아지는 불규칙성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며 "개별 용역 단위별로 수익을 구분해 계약을 세분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