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시행령 12조 4호, 이사 해임 안건 주주제안 시 거부 가능6개월 내 매매차익 반환 시 100억원 이상 손해봐야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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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이 한진칼·대한항공에 대해 주주권 행사 여부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법적인 근거가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 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보여주기용 압박 카드에 불과했다는 것.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전문 책임위원회는 지난 23일 주주권 행사 분과위원회를 개최하고, 한진칼·대한항공에 대해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에 대해 논의한 결과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다만, 한진칼의 경우 총 9명의 위원 중에서 반대 5명과 찬성 4명의 의견이 나왔고, 대한항공은 반대 7명과 찬성 2명의 의견이 제시됐다.

    결과적으로는 주주권 행사 여부가 부결된 셈이지만, 수탁자전문 책임위원회는 합의된 의견이 아닌 위원들의 각자 의견을 그대로 기금위에 보고하기로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익명을 요구한 위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상법 시행령 12조 4호에 따르면 상장회사에서 현재 임기 중인 이사를 해임하는 안건의 경우 주주 제안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회사가 이런 제안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현행법상 조양호 회장에 대한 이사 해임 등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위원들은 상징적으로 시장에 시그널을 준다는 차원에서 찬성하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위원들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밀어 붙이는 것을 성토했다는 것.

    무엇보다 실익이 없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 위원은 “6개월 이내 발생한 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하는데, 정확한 금액을 알 수 없지만 100억원 이상의 손해가 예상된다”며 “주주권 행사를 위해 100억원 이상을 손해보고, 결과적으로 이사 해임도 할 수 없는 실익 없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국민연금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자본시장법상 수탁자 책임활동을 하려면 ‘경영참여’로 변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지분 1% 이상 변동 때 5일 이내 신고해야 하고, 6개월 이내 발생한 매매차익은 반환해야 한다. 반환해야 될 매매차익이 100억원 이상이라는 얘기다.

    반대했던 위원들은 이 부분을 크게 우려한 것이다. 100억원 이상을 반환하면서까지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경영참여를 통해 적절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에 그 역풍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분 변동 신고의 경우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1%대 손실, 즉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손실액은 10조원에 이른다. 2017년의 연간 수익률이 7.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기금 고갈 등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100억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또 이사후보 추천도 준비가 안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사 해임을 제안할 경우 대안으로 새로운 후보를 추천해야 되는데 그런 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무의미한 차원의 논의였고, 시장에 국민연금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수탁자전문 책임위원회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1월말 또는 2월초에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정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책임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진그룹을 타깃으로 작심 발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