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5G, AR, VR 등 투자 환경 변화 반영투자 방식 변화… '지분참여'→ 'SSIC-삼성벤처' 등 펀드 중심 전환
  • 글로벌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지분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사업 시너지를 찾지 못했거나 손실 규모가 커진 곳을 중심으로 옥석 가르기를 시작했다. 자체적인 지분 인수 외에도 삼성벤처투자나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에서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스타트업 투자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어, 기존에 투자한 곳의 성과를 점검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1일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투자하고 있던 미국 웨어러블 기술업체인 '이네다(Ineda)'와 홈 IoT업체 '봇홈오토메이션(Bot Home Automation)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이네다에는 지난 2014년 32억 원 가량을 투자했고 봇홈오토메이션에는 지난 2016년 23억 원을 투자해 사업 제휴를 이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부터 해외 유망 IT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지분투자를 확대해왔다. 이네다와 봇홈오토메이션의 지분투자가 이뤄졌던 2014년과 2016년에는 특히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해외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웨어러블이나 IoT 관련 기업들에 대한 신규 투자가 대거 이뤄졌다.

    이들 기업에 투자한지 3~5년차에 접어들며 투자 성과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도 시작됐다. 사업적으로 시너지를 내거나 지분 투자에 대한 재무적 이익를 내는 등의 성과가 나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지분 매각이 진행됐다. 지난해 매각된 이네다와 봇홈오토메이션의 경우 특히 재무적으로 손실을 이어오고 있어 가장 먼저 처분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봇홈오토메이션은 삼성전자가 지분을 인수한지 2년 여만에 다시 처분을 결정했을 정도로 손실 규모가 심각했다. 지난 2017년 기준으로 순손실 규모가 1540억 원으로, 비슷한 시기 삼성이 투자했던 기업들 중 최악의 실적을 나타냈다. 봇홈오토메이션은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도어벨 등을 개발해 홈IoT 분야에서 삼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지만 재무 상황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네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봇홈오토메이션만큼의 손실은 아니었지만 매해 100억 원대의 손실을 기록하는 회사였다. 이네다는 전력 소모를 최소화한 웨어러블 프로세서를 개발해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미국의 퀄컴이 함께 투자를 결정한 곳이기도 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과 사업적 시너지를 내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손실과 함께 과거 대비 시너지 효과도 줄어 최종적으로 매각을 결정한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두 회사 외에도 삼성전자가 투자하고 있는 해외 업체들 중 재무적으로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곳들은 많다. 재무 여력이 크지 않고 초기 자본 소요가 많은 스타트업의 특성 상 이익 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 삼성전자가 추가적인 투자 회수에 들어갈 가능성은 크다는 평가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삼성전자가 그 간 3~5년 가량 투자해왔던 투자업체들의 옥석 가르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투자업체들이 모바일이나 웨어러블, IoT 등의 분야에 집중돼있었던 탓에 인공지능(AI)이나 5G, AR, VR 등 현재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투자 중심 축과 맞지 않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삼성전자가 자체적인 투자보다는 산하 기구인 '삼성전략혁신센터'나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의 펀드 운용을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부터는 이 같은 벤처투자 전용 펀드 운용 규모를 더 키우고 있어 과거 삼성이 해왔던 직접적인 지분투자를 점차 정리하고 펀드 운용에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