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모택동의 '참새 박멸' 교시 대기근 불러, 섣부른 개입은 재앙 '해외주식 마케팅 중단' 압박, 서학개미 혜택만 사라져 李 대통령 "국장 불신이 외환시장 영향" 발언에서 답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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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마오쩌둥(모택동)은 농촌 시찰 중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를 가리키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此鳥俗惡)"라고 일갈했다.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전 인민이 동원된 '참새 잡기 운동'이 벌어졌고, 1년 만에 2억 마리가 학살당했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 떼가 창궐해 농작물을 초토화시켰고, 이어진 대기근으로 수천만 명이 아사했다. 생태계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눈앞의 현상만 탓했던 섣부른 정책이 빚어낸 참사였다.

    2025년 대한민국 여의도에서도 21세기판 '참새잡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환율 방어에 급급한 금융당국이 "해외 투자가 환율 상승의 주범"이라며 서학개미와 증권사를 향해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일 해외투자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증권사들에게 "해외투자 관련 신규 현금성 이벤트와 광고를 내년 3월까지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투자자 보호'다.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익 2조원을 벌어들이는 동안 개인 계좌의 절반(49.3%)이 손실을 보고 있으니 과열된 마케팅을 자제시키겠다는 논리다. 이에 삼성증권, 키움증권, 토스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앞다퉈 수수료 할인과 지원금 이벤트를 조기 종료했다.

    ◇ '참새' 잡으려다 서민 지갑만 털었다 … 증권사만 '배불리기'

    문제는 이 조치가 낳을 역설적인 결과다. 서학개미들이 한국을 떠난 이유는 고작 '10~20달러'의 지원금이나 수수료 쿠폰 때문이 아니다. 박스권에 갇힌 국내 증시(국장)에 대한 실망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더 나은 수익률을 좇는 생존 본능 때문이다.

    그런데 당국이 수수료 할인 경쟁을 강제로 멈춰 세우면 어떻게 될까. 해외 주식 투자를 멈출 수 없는 투자자들은 이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수수료를 내고 거래해야 한다. 반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출혈 경쟁이 사라지니 오히려 반갑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아끼고, 투자자들로부터 제값을 다 받으며 수익성을 개선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당국은 환율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애꿎은 '개미'들의 거래 비용만 높이고 증권사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됐다. 참새를 잡았더니 해충(비용 증가)이 창궐하는 격이다.

    서학개미 탓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니 증권사를 겨냥하는 우회 수단을 동원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서학개미가 떠안게 됐다. 

    ◇ 이재명 대통령 "국장 불신이 문제" … 진단은 맞는데 처방은 왜 이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태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외환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스피가 70% 오를 때 코스닥은 30%밖에 못 올랐다"며 주가 조작, 좀비 기업의 퇴출 지연 등이 시장 신뢰를 갉아먹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는 그동안 "서학개미 때문에 환율이 오른다"며 국민 탓을 하던 기재부나 한국은행의 태도와는 결이 다른 발언이다. 환율 불안의 근본 원인이 '해외 투자의 증가'가 아니라 '매력 없는 국내 증시'에 있음을 대통령이 직접 인정한 것이다.

    ◇ 서학개미 때리기 멈추고 '기초체력' 다져야

    대통령의 진단이 나왔다면 금융당국의 처방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학개미라는 '참새'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해충이 들끓는 국내 증시라는 '논밭'을 갈아엎는 일이다.

    미국과 한국의 성장률 격차만 보더라도 서학개미가 미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성장세가 높은 경제에 투자하는 것은 계층 사다리가 끊어져 절망하는 개미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다.  

    우리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주가 조작 세력을 발본색원하고, 주주 환원율을 높이며, 좀비 기업을 퇴출해 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면 투자자들은 시키지 않아도 돌아온다. 수수료 혜택을 없애고 세금 위협을 가해 억지로 못 나가게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마오쩌둥의 참새 소탕 작전은 실패했다. 뒤늦게 참새가 해로운 새가 아님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금융당국은 대통령의 발언을 곱씹어봐야 한다. 

    지금 당국이 잡아야 할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나는 서학개미가 아니라, 그들을 떠나게 만든 후진적인 국내 자본시장의 관행이다. 섣부른 '나쁜 새' 낙인찍기가 금융 시장에 대기근을 불러오기 전에, 무의미한 탄압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