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유지 위해 조직적 반발 예상국토부, 법 개정 등 단계적 접근 검토
  • ▲ 강릉선 KTX 탈선사고.ⓒ연합뉴스
    ▲ 강릉선 KTX 탈선사고.ⓒ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선 KTX 탈선 등으로 철도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철도 당국이 메스를 들었다. 철도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진 철도안전 관련 업무·기능을 한데 모으고 체계화해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게 처방의 핵심이다.
    철도업계와 관련 기관들은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도 감지된다. 철도안전 확보 방안과 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총 3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 註>
  • ▲ 국토교통부.ⓒ뉴데일리DB
    ▲ 국토교통부.ⓒ뉴데일리DB
    철도안전을 책임질 컨트롤타워(지휘소)로서 가칭 '철도안전기술원'이 설립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잖다. 산재한 철도안전 관련 기능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과정에서 기존에 업무를 수행하던 기관들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철도전문가들은 우리 철도가 '관성'으로 가고 있다며 혁신을 위한 걸림돌로 철도기관의 이기주의와 무사안일주의를 꼽았다.

    17일 철도 관련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철도안전기술원 설립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2가지다. 우선 가칭 '철도안전기술원 설립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는 전담조직을 조속히 설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기존 철도안전법 제4조(국가 등의 책무) 조항을 고쳐 설립 근거를 두는 방안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철도안전시책의 집행·개선을 위해 철도안전 전문 집행기관을 만들 수 있게 문구를 수정하면 된다.

    출발선은 국토부 산하 철도안전기술원 설립위원회 구성이 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철도전문가와 철도기관 실무책임자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과 업무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위원회가 하게 될 거라는 견해다.

    그러나 철도업계 일각에선 철도안전기술원 설립이 순탄치만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산재한 기능을 모으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철도기관의 조직적인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 ▲ 경기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결함조사센터에서 BMW 화재 결함 설명듣는 김현미 장관.ⓒ연합뉴스
    ▲ 경기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결함조사센터에서 BMW 화재 결함 설명듣는 김현미 장관.ⓒ연합뉴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경우 국내 철도사업자의 안전관리체계 승인과 시설물 검증은 물론 철도사고통계분석, 철도안전 전문가교육, 철도차량 운전면허와 철도관제사 자격시험 등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 중이다. 공단 내부에선 철도항공안전실의 철도기능을 철도전담조직에 넘기는 것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오는 7월께 인력 충원이 예정돼 있다며 업무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단 한 관계자는 "재정 당국이 공단에 30여명의 인력을 추가로 배정했는데 이 중 25명이 철도 전문인력으로 확정됐다"며 "전문성을 갖췄다면 어느 기관(조직)에 소속돼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상적인 업무처리에 바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이나 사고통계 분석에 소홀할 수밖에 없으니 전담조직에 업무를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항공만 해도 2013년 항공사고 예방을 위해 설립된 항공안전기술원이 인증·시험·연구 등을 수행하는 데도 여전히 공단에 항공장애표시등 관리, 항공보안연구, 조종사·초경량비행장치 자격시험, 드론 신사업 등의 업무가 남아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항공안전처 관계자가 자동차 총괄 책임을 맡는 등 업무 중복도 지적된다.
  • ▲ 철기연이 개발한 무가선 저상 트램.ⓒ뉴데일리DB
    ▲ 철기연이 개발한 무가선 저상 트램.ⓒ뉴데일리DB
    형식승인 업무를 가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기연)은 업무 이관에 반대하는 태도다. 형식승인이란 제작 또는 수입하는 철도차량·용품의 규격·품질·성능 등을 검사하는 것이다. 철기연은 형식승인 업무가 연구·개발(R&D)과 얽혀있고 같이 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견해다. 사안별·과제별로 연구인력이 시험인증센터와 협업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다수의 철도전문가는 철기연이 본연의 임무인 국가 R&D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게 맞는다는 견해다. 한국교통대학교 서광석 명예교수는 "철기연이 (형식승인 업무를) 맡은 것은 당시 품질시험할 게 생겼는데 딱히 맡길 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철기연은) 기구와 능력만 있으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 있으나 사안에 따라 곁다리로 업무가 처리되기 때문에 총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철기연의 형식승인은 본부 R&D 인력이 최대 4~5년 주기로 돌아가며 인증업무를 겸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철기연이 자체 개발한 차량기술이 적잖은 상황에서 셀프 형식승인은 이해충돌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과거 전매청에 금연운동을 맡긴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외국 차량제작사가 승인을 신청했다가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업계 일각에선 형식승인 업무가 철기연에게는 계륵과 같다고 설명한다. 주된 업무가 아니어서 분리해도 큰 문제 될 건 없지만, 남 주기엔 아깝다는 것이다. 학계 한 관계자는 "철기연이 형식승인 업무로 차량·용품업체에 '갑질'을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일종의 권력처럼 인식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 "형식승인을 안 해주거나 국책 연구과제로 바쁘다며 늦게 해주면 속이 타는 건 업계"라며 "(철기연에) 잘 보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 ▲ 코레일.ⓒ뉴데일리DB
    ▲ 코레일.ⓒ뉴데일리DB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반발도 예상된다. 그러나 운영기관이 관제권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발생한 강릉선 KTX 탈선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문제가 됐던 선로전환기는 본선과 지선의 시스템이 연동돼 있었다. 지선 쪽 선로전환기 신호시스템에 오류가 표시됐다면 본선 쪽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안전을 위해선 열차 운행을 늦추거나 속도를 낮추라고 지시해야 했다. 하지만 코레일 관제센터에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열차 정시운행에 대한 압박에 조금이라도 빨리 열차를 운행하려고 안전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철도노조도 코레일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었다.

    서 명예교수는 "관제는 (앞으로 대륙철도 연결 등) 여러 업체가 들어올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선로를 배분해줄 수 있어야 한다"며 "운영기관인 코레일은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코레일 반대가 예상됨에 따라 관제권 이관을 급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철도전문가는 "철도의 경우 로컬관제라고 해서 역에서 관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국토부가 당장보다는 중장기적인 과제로 관제업무를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 명예교수는 "우리 철도는 논리보다는 관행대로, '관성'으로 가고 있다"며 "나도 공범이다. 사고 났을 때만 관심을 보였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 안전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철도기관의 이해관계로 일부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순 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안전을 확립하자는데 다들 원칙적으로 동의할 것"이라며 "철도안전은 제3의 전문기관에서 객관적으로 맡아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