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대회원 설문 통해 첩약 급여화 참여 결정… 환자 접근성 확대 의료계, 안전성·유효성 검증 없이 500억 투입은 ‘어불성설’복지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추진… 7월 건정심서 결론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가운데 의료계와 한의계 간 역대급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전에 없었던 감염병 비상시국 속 종식을 위한 화합이 아닌 밥그릇 싸움으로 인한 분열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논란의 중심은 ‘첩약 급여화’다. 

    첩약은 여러 한약 제제를 섞어 탕약으로 만든 약으로 소위 말하는 ‘한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한의원 등에서 자체적으로 가격을 매겨 환자에게 제공했는데, 이제 건강보험 영역에 진입시켜 일정 부분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을 해주는 형태로 변화가 예고된 상황이다.

    지난 9일 보건복지부는 10월부터 한의원에서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등 3개 질환을 대상으로 500억원 규모의 재정이 투입되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안건을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 소위원회 안건으로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첩약 한제(10일분)당 수가는 ▲심층변증·방제기술료 3만8780원 ▲조제·탕전료 3만380원~4만1510원 ▲약재비 3만2620원~6만3010원(실거래가 기준) 등을 합해 14∼16만원 수준이다. 이 중 절반은 환자가, 나머지 절반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한다.

    오는 7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시범사업안이 최종 확정되면 오는 10월 전국단위의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시범사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 한의계 숙원과제 풀리나… 한의협 회원 63.2% 찬성 

    첩약 급여화는 한의계의 숙원과제였다. 대한한의사협회장이 바뀌면서 수년간 이어져 온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고 43대 최혁용 회장이 그 성과를 얻기 직전이다.

    한의협이 첩약 급여화를 주장하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의사는 기득권을 갖고 있지만, 한의사는 배제된 상황이라는 진단에서 비롯된다. 

    결국 한의계는 비제도권에 있던 항목들을 제도권에 진입시켜야 한다는 목적이 매우 큰 상태다. 그래야만 환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첩약은 그 비중이 높다. 

    이러한 상황 속 한의협은 회원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는데,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 63.2%의 찬성률을 보였다. 

    한의협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2일 오전 9시부터 24일 오후 6시까지 전 회원을 대상으로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실시에 대한 찬성·반대 의견을 물었다. 

    개표 결과, 총 2만3094명의 한의사 회원 가운데 1만6885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 73.1%를 기록했고 1만682명(63.26%)이 찬성했다. 

    이와 관련 최혁용 한의협회장은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는 한의약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경제적인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차원에서 진작에 추진됐어야 하는 정책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첩약이 국민건강증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의 세부적인 설계와 실행에 완벽히 함은 물론 궁극적으로 첩약 건강보험 적용을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첩약 급여 반대” 장외투쟁 선언한 의협

    첩약 급여화 추진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퍼지고 있다.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28일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저지를 위한 긴급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창궐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했던 의협이지만, 약 500명이 참여하는 장외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인데, 과도한 행보라는 내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근본적으로 의료계가 첩약 급여화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과도하게 책정된 첩약 수가, 비합리적인 변증, 방제료 등 때문이다.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아 국민 건강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건강보험 재정 투입비중이 높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의협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부담이 커지는 심각한 상황에서 체감 가능한 실질적 지원은커녕, 수가협상마저 결렬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당장 급한 것도 아닌 첩약 급여화에 온갖 억지논리를 통해 무조건 밀어붙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이 낸 소중한 건강보험료를 안전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매년 500억씩 쏟아붓는 시범사업이 졸속으로 강행되는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려 장외투쟁을 진행한다”고 언급했다. 

    의협의 첩약 급여화 결사반대 입장에 시도의사회, 각과 의사회 등도 동조의 입장을 내며 힘을 보태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향후 몇조 원 이상의 건보재정이 소요될지도 모르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은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며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진행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첩약 급여화를 두고 정부-의사-한의사 간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코로나19 비상시국에 의료인들의 마찰이 거세지고 있다는 부분은 보건의료정책과 관련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