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통과, 본회의만 남겨법체계 배치되는 위탁기업 입증책임, 무분별 소송전 우려자료제출 의무화, 발생 손해 3배 징벌적 배상기술 범위 모호, 조사·처분 시효 사실상 무제한
  • 정부와 여당이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막겠다며 내놓은 상생협력법이 과도한 규제와 징벌적 배상책임을 물린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경제계의 합의 없이 정치적 논리로 법안을 밀어붙여 갈등만 양산한다는 우려다.

    1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개정안(상생협력법)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법사위 논의를 거쳐 4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여당은 상생협력법이 20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에서 좌절됐던 만큼 이번 회기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상생협력법은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화, 징벌적 손해배상, 수탁기업의 입증책임 완화가 주요 골자다.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는 수탁기업과 위탁기업간에 기술제공이 이뤄질때 기술 유출을 하지 않겠다는 표준계약서를 쓰도록 한다. 계약서에는 비밀유지 의무 위반시 따르는 손해배상 내용이 담기며 이를 쓰지 않는다면 양쪽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를 부과한다.

    가장 예민한 부분은 기술탈취의 입증 책임이다. 개정안은 기술자료 부당 사용 손배청구소송에서 위탁기업이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하도록 했다. 예컨대 기술제공계약을 맺은 A 중소기업이 B 대기업을 상대로 기술유출 소송을 제기하면 B 기업이 유출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B 기업이 정당한 사유없이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A 기업의 주장이 사실로 인정하고 피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리도록 했다.

    이는 피해사실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민사소송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재계는 이를 근거로 무차별한 소송전이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 대기업에 반감을 가진 하청업체가 뚜렷한 근거없이 기술유출 소송전을 벌이면 대기업이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손실, 사내 비밀 유출이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법안은 심사한 국회 산자위 검토보고서에도 "공격·방어가 공평해야 하는 민사소송에서 위탁기업에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 취지인 공정한 거래문화 확산보다는 대중소기업간 갈등만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입증책임전환 등 단순히 중소기업 보호만을 위한 규제보다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상생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유출에 대한 조사 및 처분 시효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어난 것도 문제다. 개정안은 분쟁에 대한 조사기한을 7년으로 규정했는데 분쟁조정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7년이 넘어도 조사가능하도록 했다. 하도급법 조사기한 3년에 비해 지나치게 길고, 분쟁조정에 따른 장기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 기업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기술자료의 개념이 모호하고 조사·처분시효도 없어서 위수탁 기업간의 소송전으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원이 위탁기업에 위반행위의 증명과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기업 내부정보가 무분별하게 유출될 우려가 있다. 국회 검토보고서에서도 "자료제출명령제도는 법원의 신속한 증거자료 확보와 객관적인 판단을 도모할 수 있다"면서도 "피고의 방어권 제한이나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정책실장은 "기존 법 체계와 배치되는 법안이 시행되면 혁신 기술을 개발한 후발 중소벤처기업과의 원활한 거래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대기업이 협력 대상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찾을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진정한 상생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향후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상생협력법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