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재무장관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 G20과 협력"… 오프쇼어링 차단용 포석국내 여파 주목… 작년 상장사 25% 이자 갚기도 벅찬 상황서 돌발 악재전문가들 "생각만큼 녹록지 않을 것… 우리나라 법인세 경쟁국보다 높아"
  • ▲ 2260조원 규모 인프라투자 계획 발표하는 바이든 미 대통령.ⓒ연합뉴스
    ▲ 2260조원 규모 인프라투자 계획 발표하는 바이든 미 대통령.ⓒ연합뉴스
    미국발 경기부양책에 한국 기업이 유탄을 맞을 처지에 내몰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의 경기부양책을 예고한 바이든 행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오프쇼어링(생산시설 국외 이전)을 막고자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서다. 미국발 법인세 인상 추진이 국내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6일 외신 소식을 종합하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5일(현지 시각)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에서의 연설을 통해 "30년간 이어진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며 "각국의 법인세율 하한선을 정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각국 정부가 세금 경쟁을 끝내면서 필수 공공재에 필요한 충분한 세수를 얻어 위기에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주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법인세율이 30%를 넘는 국가는 2000년 55개국이었다가 현재는 20여개국으로 줄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행정부가 21%로 내린 법인세율을 28%로 올리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방치하고 일자리 창출 요구 없이 법인세를 내렸다고 비판해왔다. 그는 법인세율(28%) 인상이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무엇보다 법인세는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2조25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위한 중요한 재원이다.

    미 행정부가 세계 주요 경제국도 덩달아 법인세 하한선을 도입해야 한다고 군불을 때는 배경에는 법인세율을 올릴 경우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꺼리고 해외로 눈길을 돌리면서 일자리 창출은 물 건너가고 조세회피처 국가로 이익을 이전할 수 있어 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 아메리칸'(미국제품 우선구매) 정책을 추진한다.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미국 공화당이 자유무역, 민주당이 보호무역주의 성향인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대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 수단으로 오프쇼어링 추징세를 통해 기업을 압박한다.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미국 내에서 판매할 때 해당 수익에 대해 10%의 징벌적 과세를 매기는 것이다. 연방정부 법인세(28%)까지 더하면 최대 30.8%의 세금을 매길 수 있다. 기업으로선 해외에서의 법인세 인하 혜택이 사라지거나 수혜의 폭이 줄어들 경우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에 따른 세액 공제라도 받는 편이 낫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 내 투자로 유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 세금.ⓒ연합뉴스
    ▲ 세금.ⓒ연합뉴스
    일각에선 미국발 글로벌 법인세 인상 압박은 우리 기업에는 잠재적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국내 기업은 코로나19로 경영상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이다. 반도체, 의료제약 등 일부 업종의 영업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유통·대면서비스는 물론 기계, 자동차 등 제조업 전반이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5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코스피·코스닥 비금융 상장기업 1017곳의 별도(개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 매출액은 1076조1000억원으로 1년 전(1093조원)보다 1.5% 줄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은 2019년 249곳에서 지난해 255곳으로 6곳 늘었다. 조사대상의 25.1%에 해당한다. 지난해 상장사 4곳 중 1곳꼴로 벌어서 이자도 못 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법인세 인상 압박은 기업 경영을 더 악화하는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2018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면서까지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지방세를 포함하면 27.5% 수준까지 올린 바 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열을 올리는 여권으로선 각종 선심성 정책을 위해 증세론 군불을 때는 상황에서 미국발 제안을 다시 한번 기업 옥죄기와 부자증세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빌미로 삼을 수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걷어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며 청년세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법인의 각 사업연도 소득에 대한 과세표준금액에서 1억원을 차감한 금액에 대해 1%를 청년세로 부과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법인세를 1%포인트(P) 올리겠다는 발상이다.
  • ▲ 대기업 몰린 도심.ⓒ연합뉴스
    ▲ 대기업 몰린 도심.ⓒ연합뉴스
    경제전문가들은 바이든발 법인세 도미노 인상이 생각만큼 녹록진 않을 거라는 의견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기 부양용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홀로 법인세를 올리면 자국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갈 테니 다른 나라도 같은 조처를 하도록 권장할 것"이라며 "하지만 공화당과 많은 경제학자가 반대하고 있어 최종 확정까지는 시간이 적잖게 걸릴 거다. (입법이) 통과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유입(110억9000억 달러)보다 유출(549억1000만 달러)이 5배쯤 많았다"면서 "법인세 인하를 통해 투자를 유도하는 등 기업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인세는 국제 조세경쟁에 강하게 노출돼 있어 (바이든 행정부 생각처럼) 쉽게 올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주요 국가 간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대부분 국가가 자국 기업 또는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유리하게 낮춰 일자리를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미 법인세 수준이 낮다고 볼 수 없다"면서 "과거에는 세계에서 중간 정도 그룹에 속했으나 지금은 상위그룹 내에서 약간 낮은 정도로, 글로벌 경쟁국들과 비교하면 되레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미국 민주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이 법인세율 인상에 반대 견해를 드러내고 있어 바이든 행정부의 입법 추진이 어떻게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