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공권력 행사 배제 안 해政, 전날 담화문서 "불법점거, 법·원칙따라 엄정대응" 경고지난달 화물연대 파업 때 원칙없는 허술 대응 지적 받아與 "엄정 대응 지원 사격"… 野 "제2의 용산참사 예견"
  • ▲ 대우조선해양 파업 현장.ⓒ뉴시스
    ▲ 대우조선해양 파업 현장.ⓒ뉴시스
    지난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불법 총파업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받은 윤석열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에 초강경 대응 의지를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주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손질을 두고 노동계가 대정부 투쟁을 벼르는 가운데 앞으로 정부의 노동문제 대응에 대한 풍향계가 될 거라는 관측이다.

    윤 대통령은 1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대우조선 하청노조 사태와 공권력 투입 관련 질문을 받고 "국민과 정부 모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답했다. 노조의 불법적인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불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더는 국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산업 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며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정부가 공권력 행사를 배제하지 않는 데는 한국경제가 복합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불법적인 파업을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바닥에 깔렸다. 경기 침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온 조선업계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불법 파업 장기화가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정부는 전날 서울청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사태 관련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선박 점거 농성을 벌이는 하청 노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무부 한동훈·행정안전부 이상민·산업통상자원부 이창양·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과 함께 파업 중단을 촉구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기업 정상화를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번 불법점거 사태는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의 대다수 근로자와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오랜 불황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한국 조선 산업이 지금껏 쌓아 올린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일부 협력업체 근로자가 불법행위로 주장을 관철하려고 동료 근로자 1만8000여명의 피해와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주요 업무시설을 배타적으로 점거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다. 노사가 대화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불법 점거 농성을 지속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다만 정부는 공권력 투입 계획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아직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 ▲ 정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관련 담화문 발표.ⓒ연합뉴스
    ▲ 정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관련 담화문 발표.ⓒ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윤석열 정부 향후 5년의 노정 관계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화물연대의 집단 불법 운송거부 사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허술한 대응으로 비판을 샀다. 이해당사자인 화주 단체가 정작 실무협상에 빠졌다는 지적부터, 화물연대가 엄중한 경제 상황을 볼모로 실력행사에 나섰음에도 사실상 정부가 화물연대 요구를 들어준 거나 진배없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정부가 집단시위를 벌인 화물연대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며 "반도체, 자동차, 소주 출하까지 못하게 힘을 과시한 이해집단에 끌려다니면 노동개혁은 물 건너간다"고 지적했었다.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도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파업을 가장한 담합 행위에 추상같이 정의의 길을 보여줬어야 한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 물류산업의 선진화를 위한 혁신의 메스를 들어주길 바랐는데 실망했다"고 적었다.

    일부 노동전문가는 "윤 정부가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의지도 없고, 전문성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 화물연대 파업시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멈춰선 화물차들.ⓒ연합뉴스
    ▲ 화물연대 파업시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멈춰선 화물차들.ⓒ연합뉴스
    정치권은 공권력 투입 가능성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시대착오적 불법파업'이라 규정하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에)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출신 임이자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불법파업이 대한민국 노사 관계를 1990년대로 회귀시키고 있다"며 "불법과 폭력을 앞세운 노동3권은 절대 보장받을 수 없고 용납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공권력 투입 시사에 과거 용산참사와 쌍용차 파업사태를 언급하며 비판하고 나섰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본 전형적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이 불법 상황을 종식해야 한다고 하자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제2의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와 같은 참사가 예견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노조인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22일부터 임금 30% 인상과 전임자 등 노조활동 인정을 요구하며 독(작업장) 내 건조 중인 대형 원유운반선을 점검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