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경 자이 디센시아' 부분중단 명령에 건설업계, '좌불안석'작업 중 '스콜성 강우' 난감…가이드라인 제시 없이 '팔짱'만지체상금 면제·감경 등 부담 낮춰주는 '퇴로' 필요성도 제기
  • ▲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잇따른 장마철 콘크리트 타설 논란에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콘크리트에 물이 섞이면 강도가 약해질 수 있는 만큼 우중 타설을 피하는 게 맞지만, 지체상금 부담에 공사를 무작정 중단하기도 쉽지 않다.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책임기술자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침만 내놨을 뿐 뒷짐만 지고 있어 책임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폭우 중 타설 작업을 진행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휘경 자이 디센시아' 현장이 부분중단 명령을 받으면서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앞서 시간당 70㎜의 강한 비가 내린 11일 동대문구청에는 '비가 쏟아지는데 레미콘 타설을 진행했다'는 내용의 민원이 2~3건 접수됐다.

    구청은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와 함께 콘크리트 강도 시험을 실시해 안전성 여부를 확인한 뒤 공사를 재개시킬 계획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GS건설은 "비가 오후에 예정돼 오전에 콘크리트 타설을 계획했지만, 예보와 달리 갑자기 비가 내렸고 비가 많이 올 땐 타설을 중단했다"는 입장이다.

    건설업계는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처럼 장마가 길어지고 스콜성 폭우가 빈번할 경우 제대로 된 대처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보통 하루 전에 다음날 일기예보를 보고 타설 여부를 결정하는데 예고에 없던 폭우가 갑자기 내릴 경우 문제가 된다"며 "작업을 즉각 중단하는 것이 맞지만 호출한 레미콘이나 작업기술자들을 그냥 놀릴 수 없어 강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 오는 날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행위는 강도 약화와 그에 따른 대형 재해로 이어질 수 있어 잘못된 것이 맞고 당장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마철 콘크리트 타설은 콘크리트 강도를 약화하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콘크리트 강도는 물과 시멘트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우중 타설로 빗물이 콘크리트에 침투하면 물 비율이 늘어 강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월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의 경우 눈·비 등 악천후 속 타설 작업에 따른 콘크리트 강도 부족이 원인으로 꼽혔다. 올해 4월 정자교 붕괴사고도 시설 노후화 과정에서 수분이 콘크리트에 침투, 강도가 약해져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사들의 '나 몰라' 관행이 제2, 제3의 '순살 자이', '흐르지오'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비판여론은 건설업계에 이어 주무 부처인 국토부를 향하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나 교통정리 없이 사태를 관망해 건설사들의 우중 타설 강행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토부는 타설 작업 중 비가 내릴 경우 전문가 판단 아래 유동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국토부 콘크리트 표준시방서에는 '강우·강설 등이 콘크리트의 품질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정해 책임기술자(감리)의 검토 및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만 명시돼 있다.

    즉 시방서에 따르면 우중 콘크리트 타설 자체는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가 아니다. '강풍·폭우·폭설 등 악천후에는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명시된 용접이나 거푸집 조립 등 다른 공정의 규정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토부가 분명한 기준 없이 공사 진행 여부를 현장 재량에 맡겨 혼란을 가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몇달 전부터 역대급 장마가 예고됐는데 주무 부처가 관련 지침을 선제적으로 마련하지 않은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기상변화로 인한 공사를 중단할 경우 건설사들의 지체상금 부담을 일부 낮춰주는 '퇴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체상금은 입주 지연 등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대가로 시공사가 입주민에게 지불하는 돈이다. 시공사 책임으로 인한 지연이 아닐 경우 지체보상금 지급 의무가 없지만, 장마나 폭우 등 기상변화는 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최근 원자잿값 인상으로 사업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 지체상금 부담까지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국토부가 세부적인 규정을 정해주고 이를 준수하는 건설사에 한해 지체상금을 면제 또는 낮춰주는 방안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