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난' 한전 사장에 김동철 前의원 낙점… 전문성 논란 불가피가스공·한난 등 에너지공기업外 수공·도공·인국공·LH도 정치인 출신 장악與, 작년 文정부 공기업 '알박기 인사' 비난… 낙하산 근절 '헛구호'
  • ▲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3월 경북 경주에서 유세 현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3월 경북 경주에서 유세 현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천문학적인 적자로 경영난에 허덕이는 에너지 공기업의 정상화를 위해 전문성 있는 인사를 영입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정치인 출신 CEO를 내려보내는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5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한전 사장 후보로 김동철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낙점했다. 공운위가 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하면 한전 이사회는 주주총회를 열어 차기 사장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김 전 의원이 한전 사장으로 취임하면 1961년 한전 창립 이후 62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 사장이 탄생한다. 한전은 군사정권 시절 군인 출신을 제외하면 문민정부 이후 정치인 출신 사장이 취임한 적이 없었다.

    제11대 이종훈 사장(임기 1993~1998년)은 한전의 전신이었던 조선전업에 발을 들인 뒤 평생을 한전에서 보낸 전문가였으며 제12대 장영식 사장(1998~1999년)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전기경제팀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였다. 제17대 김쌍수 사장(2008~2011년)은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제18대 김중겸 사장(2011~2012년)은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기업인이었다. 제19대 조환익 사장(2012~2017년)과 제20대 김종갑 사장 (2018~2021년), 제21대 정승일 사장(2021~2023년)은 에너지 분야에서 근무한 산업부 관료 출신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04년 국회에 입성해 4선을 지낸 정치인이다. 국회의원 시절 한전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現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위원장을 1년여 맡기는 했지만, 에너지 분야나 기업 경영과 큰 인연이 없다.

    지난해 대선에서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 선거운동을 한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한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도 눈총을 받고 있다. 일종의 '보은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 ▲ 한국전력 ⓒ연합뉴스
    ▲ 한국전력 ⓒ연합뉴스
    현재 한전의 재무상황은 창립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전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연결 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1조4000억 원이다. 사상 처음으로 200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 상장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한전 부채는 2020년 말까지 132조5000억 원이었지만, 2021년 말 145조8000억 원, 지난해 말 192조8000억 원 등으로 급증했다.

    한전 부채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문재인 정부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계속 미뤘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지만,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2021년 이후 47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정승일 전 한전 사장은 지난해 6월 '탈원전과 전기료 인상'을 주제로 열린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 때) 전기요금 인상을 10번 요청했지만, 1번 승인 받았다"며 "(당시) 선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했으면 적자 폭이 줄고 충격을 덜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고 5차례 전기요금 인상이 이어지면서 한전의 전기 판매 수익은 점차 정상화되고 있지만, 그동안 쌓인 '눈덩이' 부채 때문에 재무상황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정 전 사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차기 한전 사장은 한전의 재무구조와 방만한 조직을 정상화할 구원투수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 전 의원이 전문성 논란에도 정무적인 감각으로 조직을 잘 이끌어나간다면 별문제 없을 수도 있겠으나 정치인 출신 낙하산이라는 핸디캡이 거꾸로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정치권과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맞서 조직 정상화를 위한 요금인상 등에 총대를 메고 나설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잖다.

    앞서 재무상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 등도 정치인 출신을 사장으로 앉히면서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국회의원 출신으로 에너지 분야의 경력은 전혀 없다. 가스공사 사장 1차 공모 때 전문성을 이유로 사장 후보 재공모가 이뤄졌는데, 결국 최 사장이 낙점됐다. 최 사장은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이력이 있다.

    정용기 한난 사장도 비슷하다. 국회의원 출신인 데다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윤석대 사장)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학재 사장), 한국도로공사(함진규 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이한준 사장) 등의 공기업에도 대선 캠프 출신 정치인이 줄줄이 사장 자리를 꿰찼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10월 "제가 집권하면 그냥 놓겠다. 여기에다가 사장 누구 지명하고 이렇게 안 하고,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을 (공기업 사장) 시키는 일은 안 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이었던 지난해 3월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정권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 출신 인사, 더불어민주당 보좌진 출신이 한국 IPTV방송협회장, 한국공항공사 사장, 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 등의 요직에 줄줄이 기용됐다"고 질타했었다. 공기업 사장 자리를 두고 낙하산 인사 근절에 대한 호언장담이 '헛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