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영장 청구 사법리스크 고조'국민 기업→불신 기업' 전락 우려회전문 인사 등 낡은 조직 교체 목소리과거 반성 머물지 말고, 창업 당시 마음으로 '새판' 짜야
  • 24일 새벽 1시 40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15시간 40여분의 금감원 조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옷깃을 추스르며 문밖을 나서는 김 창업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는 짧은 말을 남긴 채 그는 묵묵히 차량으로 이동했다. 차량 탑승까지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김 창업자의 머릿속은 무던히도 복잡했을 것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창업자의 목을 조여오면서 카카오는 시련의 10월을 보내고 있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등 경영진 3명에 대한 영장이 청구되면서 사법 리스크는 현실이 됐다. 김 창업자도 이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거라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오너 리스크로 확전되는 모양새다.

    유죄 여부를 따지는 건 검찰의 몫이지만, 김 창업자의 영장 청구 소식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데이터센터 화재를 비롯해 임직원들의 도덕적해이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불거진 악재였다. 카카오 주가는 연일 신저가를 갈아치우고 있으며, 핵심 경영진의 부재로 주요 사업 및 투자에 비상이 걸렸다. 한때 국민메신저로 칭송받고, 대한민국 IT를 이끌던 기업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형국이다.

    설령 김 창업자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떨어진 주가만큼이나 신뢰 회복이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카카오 내부만봐도 사방팔방에서 쏟아져나오는 이슈에 치여 어수선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경영진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법 리스크는 '예견한 일'이라는 덤덤한 반응이다. 그만큼 카카오가 최근 몇 년간 보여준 불신의 뿌리는 깊게 자리 잡았다.

    김 창업자는 고심끝에 매주 월요일마다 공동체 경영회의를 열고, 준법 경영과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공동체의 준법 경영 실태를 점검하는 기구를 마련해 사회적 눈높이에 부응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춰 나가겠다는 것. 외부 통제라는 강수를 두고 경영 쇄신을 하겠다는 김 창업자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이 역시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후속조치라는 점에서 근원적인 조직개편으로 보기에는 의문이 든다.

    카카오가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조직 개편과 체질 개선이 아니다. 김 창업자는 카카오를 원점에서 살펴보고, 창업 당시의 마음으로 새판을 짜야한다. 카카오의 발목을 잡는 인맥 위주의 회전문 인사는 과감히 도려내는 용단(勇斷)을 보여줘야 한다. 아마존, 구글, 텐센트, 바이두 등 글로벌 기업들의 조직 문화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경쟁사인 네이버의 시스템과 냉정히 비교해 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김 창업자 혼자서 카카오의 모든 짐을 짊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인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144개에 달하는 계열사들의 임직원들은 미래가 아닌 오늘을 걱정한다. 반성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는 김 창업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