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향한 격한 언사 다시돈잔치 이어 종노릇까지 등장… 횡재세 논의도 부활외인들 투매… 신한 30만주, 하나 22만주, 우리 18만주
  •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열리는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 연설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열리는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 연설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입에서 '은행 종노릇'이란 단어까지 나왔습니다. 그것도 나라의 모든 정책을 관장하는 국무회의 자리에섭니다. 대통령실은 민생 현장을 찾은 참모진들이 전한 '현장의 목소리'라고 서둘러 진화했지만, 한층 강해진 대통령의 금융권 비판 수위에 은행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한 정확한 워딩은 아래와 같습니다.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해당 발언이 알려진 후 여의도 금융권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주가는 주저앉기 시작했습니다. 신한지주 30만주, 하나금융, 22만주, 우리금융 18만주 등 외국인들의 투매가 이어졌습니다. 외국인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관치 리스크'가 터진 것이죠.

    주목할 점은 외인 투매 속에서도 기관 투자자들은 더 팔아치웠다는 점입니다. 특별한 악재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외인이 주식을 던지면 기관들은 싼 가격에 줍기 마련인데요.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한지주를 제외한 KB, 하나, 우리금융에서는 기관들의 주식 매도세가 더 강했습니다. 외국인이 22만주를 매도한 하나금융은 기관 매도량이 51만주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사정을 잘아는 기관 투자자들도 은행주 투매에 동참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투자은행(IB)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감축을 위해 대출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이 포인트다. 빚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이자가 너무 많다는 지적을 했다는 것은 금리를 올려서 부채를 줄이는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인식으로 보인다."
  • ▲ 한 자리에 모인 금융지주 회장들. 왼쪽부터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태오 DGB금융 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뉴데일리DB
    ▲ 한 자리에 모인 금융지주 회장들. 왼쪽부터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태오 DGB금융 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뉴데일리DB
    그렇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너무 늘었다는 지적에 대출 문턱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고 연소득 1억원 이상에게도 내주던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도 중단했지요. 여기에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도 용인하고 있습니다. 대출 총량이 줄면 은행들의 이자 수익도 줄기 때문인데요.

    많은 사람들은 윤 대통령 바로 이 지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계대출을 줄이는 건 좋은데 왜 은행이 이자 수익 증가라는 반사이익을 얻느냐는 얘기죠. 결국 힘들때 은행들도 팔걷고 나서달라는 의미로 소위 상생금융을 압박하는 정치적 언어로 보입니다.

    사실 은행들이 이자 장사를 잘한건 사실입니다. 4대 금융지주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이자이익은 3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작년 같은 기간보다도 3.5% 성장한 수치입니다. 다만 이는 대출규모가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지 순이자마진(NIM)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와 같은 손쉬운 이자 장사는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얘기입니다.

    은행이 계속 이자 장사에 나선다면 횡재세 논의도 불붙을 수 있습니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유럽연합(EU)가 도입한 연대 기여금 같은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당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의 주요 재원으로 횡재세를 지목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당장은 횡재세 도입에 대해 정부는 부정적 입장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은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여권 내부에서도 횡재세 도입을 찬성하는 여론도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수출금융 간담회에서 이탈리아가 은행의 순이자수익의 40%를 횡재세로 부과키로 했다는 기사를 회의 자료에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은행들의 고민은 깊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저리 대출 상품을 개발하고, 대출금리를 다시 낮춰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사회 공헌 활동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난해 은행연합회와 회원사의 사회공헌 사업 지원액은 1조2380억원 수준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이자 이익을 많이 가져온 것은 사실 아니냐"며 "순이익의 일정 부분을 투자해 별도의 서민금융이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은행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얘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