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모펀드 JIP 새 주인… 상장 폐지 후 체질개선일본 대표 전자·반도체 몰락… 낸드플래시, 노트북 등 첫 개발'분식회계' 이어 '원전' 실패 최대 패착… 구조조정 이어 매각까지중요도 높아진 반도체 산업… 韓 기업들 "도시바 몰락 반면교사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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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인 도시바가 74년 만에 도쿄증시에서 상장 폐지된다. 사모펀드를 새 주인으로 맞아 체질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한 때 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하고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던 도시바의 몰락에 국내 기업들도 다시 한번 고삐를 죄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자칫하면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20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날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돼 비공개로 전환된다. 지난 1949년 증시에 상장한지 74년 만의 일이다.

    이는 최근 일본계 사모펀드인 일본산업파트너스(JIP) 컨소시엄이 도시바를 공식적으로 인수하면서 이어지는 후속 조치다. JIP 컨소시엄은 지난 8월 공개매수에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인수를 최종 마무리 지었다. 이 자리에서 상장 폐지 안건도 통과됐다. JIP에는 20여 곳의 일본 기업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도시바는 소니, 파나소닉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1875년 설립돼 올해로 148년을 맞는 역사 깊은 기업이기도 하다. 하드디스크(HDD)와 반도체,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오다 지난 1980년대 반도체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도시바 이름이 본격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일본 최대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매출을 지속적으로 키운 덕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두번째로 큰 규모 기업이자 일본 1위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도체 분야에선 혁신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1980년엔 '노어(NOR) 반도체'를 개발하며 플래시메모리 시장을 처음 개척했고 현재의 낸드플래시 반도체도 도시바에서 처음 개발해 상용화했다. 노트북의 시초도 도시바에서 처음 개발된 휴대용 컴퓨터였다.

    그러다 지난 2015년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가 발생해 도시바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총 1518억 엔(약 1조 4000억 원)의 영업이익이 과대 계상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2015년엔 창사 이래 최대 손실(4600억 엔)을 기록하고 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이듬해인 2016년 원자력 발전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은 직접적으로 도시바가 몰락하게 된 주 원인으로 꼽힌다. 2011년 일본에 닥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태로 원전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서 무려 54억 달러를 들여 투자한 자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국 인수 10년 만에 캐나다 사모펀드에 매각하며 손실을 매듭지었다.

    이후 2017년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에서 대규모 증자를 받아 위기를 넘기는 듯 했으나 도시바 경영 문제로 이 펀드와 갈등을 빚으면서 2년 전인 2021년부터는 매각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앞서 도시바는 이미 사업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생활가전 사업과 의료기기 사업, 반도체 사업 등 핵심 사업을 대거 정리한 상태였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회사를 분할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산되고 도시바 자체를 매각하는 안이 추진됐다.

    JIP 컨소시엄 외에도 미국계 베인캐피털과 영국계 사모펀드인 CVC캐피털파트너스가 도시바 인수를 타진했지만 도시바 이사회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이라는 도시바의 상징성을 감안해 JIP에 인수를 허락했다. JIP도 이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일본은행들이 대출을 약속하면서 지난 3월 인수가 확정됐다.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인수 후에도 도시바는 기존 최고경영자(CEO)가 자리를 유지하며 수익성 개선과 체질 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도시바를 분할해 일부 매각을 통해 자산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주인이 바뀐 도시바의 이후 행보를 예의주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시바 임직원 수만 약 10만 6000명으로, 분할, 매각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도시바가 하고 있는 반도체 사업은 현재 같은 패권경쟁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 안보와도 연관이 깊은 분야라 가뜩이나 여기에 관심이 많은 일본 정부의 관심이 쏟아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최대 반도체 기업이자 전자기업이었던 도시바의 몰락 과정을 지켜본 국내 기업들도 감회가 남다르다는 반응이다. 한 때는 넘보기 힘들었던 기술 기업이었던 도시바가 불과 몇 년 사이 잘못된 투자 판단과 경영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도시바가 무너지던 당시보다 현재 더 빠르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반도체, 전자업계 사업 환경에 위기감도 크다. 더구나 최근엔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라 잠시 잠깐의 경영 판단 오류로 순식간에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도시바가 반도체와 전자업계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과거보다 훨씬 더 이해관계가 복잡해진 반도체 산업에서 시기적절한 투자 판단과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