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장기 심리지원 예산-체계 시급하다 소방방재청-복지부 이원화… 통합대응 어려워 피해자, 유족, 잠수부, 구조 관련자 등 포함을 美 국가 PTSD센터 운영… 10년간 지원-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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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일반 국민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대리외상증후군(대리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증후군)을 앓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 그동안 수많은 참사가 발생했지만 정부가 사고 피해자들의 심리치료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재난 심리지원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심리 지원 활동은 정부로서도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때문에 구체적 매뉴얼도 부족하고, 피해자들의 정신 건강관리를 위한 체계가 아직 미흡하다는 사실을 절감 했습니다.”

     

    세월호 사고 수습 현장에서 심리 지원을 지휘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사상 최악의 이번 사고는 비극적 상황에서 실종자 구조·수색이나 부상자 치료와 함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 속 상처’를 제대로 달래고 감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뚜렷하게 보여줬다.

     

    특히 구조된 단원고등학교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건은 역설적으로 ‘심리 지원’의 필요성이 가장 부각된 사례였다.

     

    대형사고 발생 시 생존자와 가족 등의 마음을 최대한 빨리 안정시키고 평온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관련 체계를 서둘러 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 학생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해외 트라우마 전문가가 방한했다. 지난 11일 이스라엘 민간구호기구인 ‘이스라에이드’ 의료진이 진도 사고 해역에 방문했다. 이들은 사고 현장을 점검한 뒤 광주로 이동해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상대로 한 교육을 진행했다.

     

    정신과 교수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에이드는 미국 9·11 테러와 일본 대지진 등 테러와 자연재해 등의 트라우마를 치료해 온 세계적인 심리 치료 전문가다.이스라에이드는 잦은 테러와 전쟁으로 트라우마 치료가 체계화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들며 치료 노하우를 전수했다.

     

    트라우마가 발생한 지 2~4개월이 지난 후에도 계속 팀을 이뤄서 지속적으로 방문해 치료한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을 위한 심리 상담사와 사회복지사도 배치돼있다”

     

    -이스라엘 정신과 교수 에스티 아브논 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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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연방재난관리청이 재난관리와 심리치료를 담당하도록 일원화했다. 미 정부는 테러 발생 10년 후까지 피해자들을 관찰,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고 심리치료에만 3조원을 쏟아 부었다. 미국은 이미 25년 전인 1989년 베트남 참전용사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보훈처 산하에 국립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센터를 설립했다.

     

    뉴욕시는 9·11 테러 발생 이후 생존자와 경찰관, 소방수, 응급구조요원뿐 아니라 목격자들도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했다. 2011년부터는 월드트레이드센터 헬스프로그램(WTCHP)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기준 PTSD, 당뇨, 천식 등 7만여명을 지원했다.

     

    또 사고로 인해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이들에겐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등 단순히 일회적인 경제적 보상에 그치지 않고 다시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사고 직후인 지난달 18일 고대 안산병원이 구조된 학생과 교사, 일반 승객 55명의 스트레스 지수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중등도 이상의 ‘심한 스트레스’ 상태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점수(1~10점)의 평균이 7.8~8점에 이를 만큼 우울·불안 증세가 심했다.

     

    이처럼 대형 사고를 목격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큰 위험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단기적으로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악몽 등을 통해 사고 장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거나 신경이 곤두서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쉽게 잠들기 어렵다. 심한 경우 사람을 피해 아예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공황발작·환청·공격성향·우울증을 호소한다.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환자의 10~20% 정도는 만성·장기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단계로 진행한다. 과민 상태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건에 대한 기억·꿈이 반복되는 등의 증상이 1개월이상 이어질 경우 PTSD를 의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형 참사 후유증을 효과적으로 치유하려면 일원화된 국가 차원의 전문심리치료센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도 안산 트라우마센터 외에 국립서울병원에 ‘중앙심리외상지원센터’를 3년 내 설립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청사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재난 심리 지원은 소방방재청이 맡고, 이후 트라우마 치료는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나뉘어 체계적인 정책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소방방재청은 2007년부터 17개 광역지자체에 재난심리지원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연간 총 예산은 2억3600만원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단체와 50대 50으로 분담하는 것을 감안해도 총 4억7200만원으로, 센터 한 곳당 연간 운영비는 28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재난심리지원센터는 정신과 의사 한명 없이 상담 자원봉사에 의존해 꾸려지며 실제 이용 실적도 미미한 수준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도 복지부 관할 지자체 정신건강센터가 역할을 했을 뿐 소방방재청이 운영 중인 재난심리지원센터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소방방재청은 복지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 4개 부처가 관련된 중앙재난심리지원단을 총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난 발생시 초기 심리상담부터 중장기적 트라우마 치료까지 보건복지부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운영 중인 재난심리지원센터를 비롯해 전반적인 심리 지원 및 정신보건적 접근은 복지부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소방방재청이 국가안전처 등 재난 관련 컨트롤타워를 맡더라도 정신보건 파트는 복지부에 위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익명을 요구한 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