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배출 못했지만 여신전문가 영입, 수익 극대화 기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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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넘게 끌어온 수협은행장 인선이 9부 능선을 넘은 가운데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정부 측을 압박했던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의 득실에 관심이 쏠린다.
겉으로는 관료 출신 낙하산은 막았지만, 내부 출신 행장 배출에는 실패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하지만 여신전문가 영입으로 소위 '돈 잘 버는' 은행으로 거듭날 자양분을 얻은 것은 무형의 성과다.
아울러 연임 제한의 난제가 있지만, 차선으로 중임을 고려하더라도 사후 표심 공략에 유리한 밑천은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Sh수협은행에 따르면 이날 이사회가 열려 전날 은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가 단독으로 추천한 이동빈 전 우리은행 부행장의 행장 선임안건을 처리했다.
이원태 전 행장 사임 이후 행추위가 공전하며 6개월 이상 제자리걸음 하던 행장 인선이 9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남은 절차는 오는 24일 예정된 수협중앙회 주주총회뿐이다.
수협 주총도 문제가 되진 않을 전망이다. 김 회장은 그동안 행추위가 관료 출신 낙하산을 추천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혀왔으나 민간은행 출신 전문가가 추천된 만큼 이 후보자를 비토하지는 않을 거로 관측된다.
김 회장은 "이번에는 꼭 내부출신이 아니어도 (행추위가) 유능한 전문가를 추천하면 수용할 생각"이라며 "(이 후보자는) 평판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협은행장 인선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관료 낙하산을 반대하며 6개월을 버틴 김 회장의 득실계산에 관심이 쏠린다.
김 회장은 수협은행장 인선 조건과 관련해 크게 2가지를 언급해왔다. 관료 출신 낙하산 반대와 16년 만의 내부 출신 행장 배출이 그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이 후보자 추천으로 낙하산 관료는 막았지만, 내부 출신 행장 배출에는 실패해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셈법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김 회장은 수협은행이 54년 만에 중앙회에서 독립한 것을 계기로 더는 관료 출신 낙하산이 행장으로 오면 안 된다고 역설해왔다.
김 회장은 공적자금 조기 상환을 위해서라도 수익을 내야 하므로 금융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태도였다.
강명석 상임감사를 지지하며 내부 출신 행장 배출을 추진한 것도 내부 화합 등을 통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내부 출신 행장 배출은 부차적인 가치일 뿐 방점은 수익 창출 극대화에 찍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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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이 수협은행의 수익 개선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의 수협 운영 원칙과 맥이 닿아 있다. 김 회장은 수협의 존재 목적은 어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수협은 수협은행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수혈받은 1조1581억원 규모의 공적자금 상환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수협은행이 독립하면서 상환 의무는 고스란히 수협중앙회가 떠안았다.
수협은행이 더 많은 수익을 내지 못하면 공적자금 조기 상환은 물론 수익금으로 어민에게 다양한 혜택을 돌려주기 위한 사업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협은 지난 3월 처음으로 127억원의 공적자금을 갚았다. 지난해 수협은행이 786억원의 세전 당기순이익을 냈기 때문이다.
수협은 앞으로 11년간 공적자금을 나눠 갚을 예정이다. 조기 상환을 위해선 수협은행의 분발이 필요한 처지다.
김 회장으로선 기다림 끝에 내부 출신까지는 아니어도 여신관리·금융전문가인 이 후보자를 추천받게 돼 적잖은 플러스알파(+α)를 얻게 됐다.
1983년 상업은행에 입행한 이 후보자는 35년간의 풍부한 은행 경험을 갖췄다. 우리은행 기업금융단 상무를 거쳐 2014년부터 올해 초까지 여신지원본부장(부행장)을 지냈다.
이 후보자는 이광구 은행장의 특별주문을 받고서 우리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에선 우리은행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은 물론 유동성커버리지(NPL) 비율을 대폭 높인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 부실 규모 감축과 공적자금 상환 등 수협은행에 남겨진 숙제와 내부 분위기 쇄신을 고려할 때 이 후보자가 적임자라는 의견이 나온다"고 전했다.
김 회장으로선 정부 측과 대립각을 세우며 6개월 남짓 버틴 득이 실보다 큰 셈이다.
일각에선 김 회장 임기 종료 후를 생각했을 때도 관료 낙하산 대신 민간 전문가 영입이 유리한 포석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관련 법률이 농협·수협회장의 연임을 제한하고 있어 걸림돌이지만, 개정안이 발의된 데다 당장 연임은 아니어도 중임은 허용하는 만큼 추후 김 회장이 다시 한번 수협을 이끌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수협은행 활성화를 통한 수협의 역할 강화가 나중에 힘을 실어줄 거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