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4%↑…근원물가도 4.1%↑공급불안에 소비수요 겹쳐…생활물가 6.7%↑긴급민생대책 효과 '미미'…尹 "경제위기 태풍 권역에"
  • ▲ 유가.ⓒ뉴데일리DB
    ▲ 유가.ⓒ뉴데일리DB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5.4%까지 치솟았다. 14년여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본격적으로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회복하면서 외식과 여행 수요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설상가상 전기료·도시가스료 등 공공요금도 큰 폭으로 뛰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생활물가 안정 위주로 긴급 민생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대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따른 물가상승률을 상쇄하는 데 그쳐 체감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3일 통계청이 내놓은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년=100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5.4%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올라선 것도 2008년 9월(5.1%) 이후 처음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3.2%) 이후 5개월 연속 3%대 고공행진을 이어오다 올해 3월 4%대로 진입했고 두달 만에 5%대 초중반까지 치솟았다.

    공업제품, 서비스, 농·축·수산물, 전기·수도·가스가 모두 상승했다. 석유류는 34.8% 오르며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국제유가 상승 추세에 따라 휘발유(27.0%), 경유(45.8%), 자동차용 LPG(26.0%), 등유(60.8%)가 모두 큰 폭으로 뛰었다. 전달과 비교해선 0.5% 상승했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유류세 인하폭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부가가치세 10% 포함)가 ℓ당 656원에서 573원으로 줄었다. 연비가 ℓ당 10㎞인 휘발유 차량을 매일 40㎞씩 운행하는 소비자라면 한달에 1만원쯤을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공급 차질 심화로 석유류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체감 혜택은 미미한 수준이다.

    석유류 가격이 뛰면서 공업제품도 덩달아 8.3% 올랐다. 2008년 10월(9.1%)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등락률 기여도를 보면 공업제품은 2.86%로 5월 상승률의 절반 이상(53%)을 차지했다.

    전기·수도·가스는 9.6% 올랐다. 2010년 1월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전기료 11.0%, 상수도료 3.5%, 도시가스 11.0%가 각각 올랐다. 전기료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지난해 4분기(10~12월) 연료비 조정단가를 전분기보다 3.0원 올리면서 반등하기 시작해 8개월째 상승했다. 한전은 올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키로 했다. 그러나 전기료를 구성하는 기준연료비(전략량 요금)와 기후환경요금은 이미 추가 인상이 결정된 상태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월과 오는 10월 2회에 걸쳐 기준연료비를 kWh당 4.9원씩 총 9.8원을 올리기로 했다.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2원 올랐다.

    도시가스료도 4월 주택용 도시가스료가 메가줄(MJ)당 0.43원, 음식점 등에 적용되는 일반용 요금은 0.17원 각각 오른 데 이어 지난달에도 가스요금 정산단가가 1.23원 올랐다. 정부와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말 '2022년 민수용(가정용) 원료비 정산단가 조정안'을 의결하면서 가스요금 정산단가를 7·10월 2차례 더 올린다고 발표했다. 시기별 정산단가는 7월 1.9원, 10월 2.3원이다. 공공요금이 앞으로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 물가.ⓒ뉴데일리DB
    ▲ 물가.ⓒ뉴데일리DB
    밥상물가와 밀접한 농·축·수산물은 지난달 4.2% 올랐다. 사료비와 물류비가 오르면서 수입쇠고기(27.9%), 돼지고기(20.7%), 포도(27.0%), 닭고기(16.1%), 감자(32.1%) 등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전달과 비교하면 1.8% 상승했다. 식탁물가를 자극했던 농·축·수산물은 한동안 상승세가 주춤했으나 다시 들썩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7.8%, 올해 1월 6.3%의 높은 상승세를 보이다 2월 1.6%, 3월 0.4%로 오름폭이 크게 둔화했으나 4월 1.9% 반등한 뒤 지난달 4.2%로 오름폭을 키웠다.

    3.5% 상승률을 보인 서비스 부문에선 공공서비스(0.7%)보다 개인서비스(5.1%)가 많이 올랐다. 공공서비스는 국제항공료(19.5%)와 외래진료비(2.3%)는 오르고 유치원 납입금(-18.6%)과 부동산 중개수수료(-7.7%)는 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국제항공료가 큰폭으로 뛰는 모습이다.
    2008년 12월(5.4%)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인 개인서비스는 보험서비스료(14.8%)와 생선회(외식·10.7%), 치킨(10.9%), 공동주택관리비(4.1%)가 올랐다. 반면 병원검사료(-31.3%), 가전제품 렌털비(-5.9%), 자동차보험료(-1.3%), 독서실비(-0.8%)는 내렸다. 서비스 물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외식 물가는 7.4% 올랐다. 지난해 7월(2.5%) 이후 상승세가 뚜렷하다.

    집세(2.0%)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세(2.7%)와 월세(1.0%) 모두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시행과 맞물려 전세는 지난해 5월 이후 25개월 연속, 월세는 2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전세는 지난 3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0.1%포인트(p) 내리며 오름폭은 둔화하는 모습이다.

    계절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물가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려고 작성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는 105.73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증가했다. 2009년 4월(4.2%) 이후 최고 상승 폭이다. 4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보이다 4%대에 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는 104.60으로, 지난해보다 3.4% 올랐다. 4월(3.1%)보다 오름폭도 커졌다.

    체감물가를 파악하려고 지출 비중이 크고 자주 사는 141개 품목을 토대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109.54로, 1년 전보다 6.7% 상승했다. 2008년 7월(7.1%)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식품(7.1%)과 식품 이외(6.4%) 모두 올랐다. 전·월세 포함 생활물가지수는 6.0% 상승했다.

    신선식품지수는 1년 전보다 2.5% 올랐다. 생선·해산물 등 신선어개(2.5%)와 신선과실(4.8%), 신선채소(0.1%) 모두 올랐다.
  •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尹대통령 "6·1지방선거 승리 논할 상황 아냐"

    정부는 지난달 30일 할당관세를 내려 수입 돼지고기 가격을 최대 20% 싸게 공급하기로 하는 등 생활물가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p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는 6·1 지방선거를 사흘 앞두고 국회를 통과한 39조원대 2차 추경으로 오른 물가상승률을 되돌리는 수준에 그친다. 한국은헹은 2차 추경이 물가를 0.1%p 밀어 올릴 것으로 추산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3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지방선거로 국정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많다'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집에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거 못 느끼십니까. 우리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의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가 있다"면서 "정당의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여권의 압승보다 민생경제 현안 해결이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