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수백만 마리의 가금류의 살처분이 루어지고 있다. 

AI는 닭, 칠면조, 야생조류 등 여러 종류의 조류에 감염되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전파가 빠르고 병원성이 다양하다. 주로 닭과 칠면조에 피해를 주며 드물게 사람에게서도 감염증을 일으킨다. 

조류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증상은 호흡기증상, 산란율 저하와 폐사이다. 사람의 전염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와의 접촉, 특히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의 배설물이 감염의 주요 매개체이다. 

하지만, 조리된 조류를 먹어서 조류 독감에 걸리지는 않는다. 인체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기침과 호흡 곤란 등의 호흡기 증상이며 발열, 오한, 근육통, 설사, 두통 및 의식 저하와 같은 중추신경계 관련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호흡기 증상 없이 위장관계 증상이나 중추신경계 관련 증상만 나타난 사례도 있다.

원인체는 병원성에 따라 고병원성 AI와 저병원성 AI로 구분된다. 2003년 말부터 2008년 2월까지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ighlypathogenic avian influenza A, H5N1)가 인체에 감염된 사례가 640건 이상 보고되어 있다. 2013년에는 중국에서 H7N9이 유행하여 400 명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4년 국내에서 H5N8 감염이 확진되었으나, 아직까지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다.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감염될 위험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AI는 급속히 진행되면서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므로 인공 호흡기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전신 장기의 기능 이상으로 진행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현재까지 보고된 인체 감염사례 376건 중 환자가 사망한 경우는 238건이다.

AI는 어떻게 발생되어 잊을만하면 찾아와 우리의 겨울을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걸까? 지난 2014년 1월 17일, 고병원성 AI 관련 역학조사를 위해 전북 고창 동림 저수지를 찾았던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직원들은 해마다 겨울이면 이곳을 찾아 환상적인 군무(群舞)를 선사했던 가창오리 무리의 떼죽음을 발견하고, 사체를 검사해 이들이 고병원성AI(H5N8)에 감염돼 사망한 것으로 확진, 발표하였다. 가창오리 떼죽음은 사육되는 가금류가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가는 철새라는 점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그 발생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다. 첫째, AI 바이러스 자체의 고병원성이다.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가 75% 이상 죽으면 그 바이러스는 고병원성으로 분류한다. 그 때 유행한 H5N8이 워낙 고병원성이어서 철새들이 이를 이겨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가창오리의 서식지 변화다. 환경오염과 개발로 인해 철새들의 서식지는 갈수록 좁아져 이처럼 개체들이 밀집된 환경에서 서식할 경우 한두 마리의 희생으로 끝날 질병도 대규모 전염병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은 숙주의 몸속에 유입되어야만 생활사가 완성된다. 때문에 전염병의 대유행은 감염 가능한, 면역력이 없는 개체가 일정 수 이상 존재해야만 가능하다.

이와 비슷하게 인류의 증가에 제동을 건 전염병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흑사병(black death)이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원인은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었다. 이는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에 의해 전염되는 균이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쥐의 피를 빨아먹는 동안 페스트균에 감염되고, 이 벼룩에 사람이 물리면 페스트균에 감염된다. 그런데 이 페스트균이 어떻게 수십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죽음의 사자로 변모한 것일까?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해당 원인이 인구의 갑작스런 증가와 밀집에 있다는 가설이다. 9세기에 걸쳐 13세기에 이르는 400여 년간, 서구 유럽의 인구는 이전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며 도시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발병한 페스트는 도시화로 인해 밀집된 사람들과 그들이 버린 쓰레기 속에 살던 쥐들에 의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채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갔다.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던 페스트가 사라진 것은 효과 좋은 치료제가 만들어져서가 아니었다. 페스트균이 감염시킬 새로운 인간 숙주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페스트의 사망률은 매우 높았지만, 그중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페스트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었다. 인구 집단 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페스트에 걸리고 나면, 페스트는 감염시킬 새로운 숙주의 부족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구 집단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다면 이들은 다시 찾아온다. 이리하야 중세의 페스트가 최초의 대유행 이후 10여 년간을 주기로 유행했었고 이 페스트의 대유행은 결국 다음 숙주를 만날 기회가 드물어지는 수준까지 인구가 급감한 뒤에야 사라지게 됐다.

가창오리의 떼죽음과 페스트로 인한 인구의 급감은 우리에게 전염병 대유행의 기본 공식을 제공한다. 미생물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숙주와 미생물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밀집된 숙주의 생활환경, 이 두 가지는 전염병의 기본 구성 요소다.

그런 점에서 현대화된 가금류 사육시스템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현대식 양계장은 닭과 오리를 좁은 우리에 가두거나 혹은 일정 공간 내에 빽빽하게 몰아넣고 대규모로 사육한다. 개체밀도가 워낙 높기에 이 중 일부라도 전염성 질병을 앓는 경우, 질병은 순식간에 전 개체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이들은 암탉이 알을 낳자마자 수거돼 인공부화기에서 부화된 뒤, 소독약이 뿌려진 양계장에서 배합 사료를 먹고 자라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면역력을 갖출 기회조차 없다. 즉, 현대식 축산 시스템 상에서 사육되는 가금류들은 근본적으로 전염병의 대유행을 담보하는 형태인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이런 공장식 축산 시스템 하에서 사육되던 수많은 가금류들이 AI가 한번 유행할 때마다 수십만 마리씩 떼죽음 당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경제적 효율’을 위해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정말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적십자병원 병리과장(MD/ PH. D)